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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SAY] 황석희 번역가의 <썸씽로튼> 번역기, 생명 창조의 경이로움 [No.204]





황석희 번역가의 <썸씽로튼> 번역기
생명 창조의 경이로움


2019년 <썸씽로튼> 내한 공연 당시 뮤지컬 자막 번역은 처음이었지만 영화 작업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관객들이 자막을 보는 것은 똑같았으니까. 배우들이 매번 완벽히 똑같은 대사를 하지 않는다는 점이나 캐스트에 따라 대사가 조금씩 달라서 자막과 맞지 않을 때가 있다는 점을 빼면 십여 년간 영화 자막만 다뤄온 입장에선 오히려 장점을 살리기 좋은 작업이었다. 그동안 난 곧 죽어도 한 화면 안에 두 줄로 처리해야 하는 자막만 만들어왔다. 그래서 여차하면 서너 줄까지도 쓸 수 있는 뮤지컬 자막 작업에선 이러한 물리적인 한계에서 오는 부담감이 덜했다. 자막 간의 효율적인 연결을 위한 접속사 사용법이나 조사, 어미 처리 등은 애초에 영화 번역가의 영역이기 때문에 뮤지컬 자막을 처음 작업했음에도 상당한 이점으로 작용했다.

그러나 <썸씽로튼> 라이선스 공연 대본 번역은 전혀 다른 문제였다. 평소에도 자막을 입말에 가깝게 쓰는 것을 원칙으로 삼고 있어서 발화해도 그리 어색하지 않은 자막을 쓰는 편인데, 이번엔 그리 어색하지 않은 정도가 아니라 반드시 자연스러운 입말 대사를 써야 하는 작업이었다. 게다가 내가 만든 대본을 가지고 누군가 연기할 거라고 생각하니 그 부담감이 엄청났다. 자막 작업은 내가 완성한 자막을 그대로 노출하면 그만이지만 배우를 위한 대본은 나 이외에도 여럿의 손길이 더해질 것이었기 때문에 어떤 결과물이 나올지 도무지 상상이 되지 않았다. 대본 작업에서 내가 어디까지 관여해도 되는 것인지, 배우들과 논의하는 것이 실례가 되는 것은 아닌지, 그런 일들을 혹시 연출부에서 월권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을지. 이런 부분에 대해 아는 것이 하나도 없었다.

어떻게 보면 내한 자막과 라이선스 대사는 정반대의 원리로 작용한다. 자막은 배우가 발화하는 외국어에, 즉 외국어를 모르는 사람에겐 무의미한 음성에 불과한 소리에 번역가가 적절한 의미를 입혀 시각적인 기호 체계로 관객에게 전달한다. 이때 시각과 청각의 간극에 존재하는 괴리는 물리적인 것이기 때문에 자막에서 이 한계를 극복할 방법은 없다. 반면에 라이선스 대사는 번역가가 시각적인 기호 체계로 옮겨 적어 놓은 대사에 배우가 숨을 불어넣어 관객에게 가장 익숙한 언어로 발화, 전달한다. 이렇게 자막과 대사의 전달 방식은 정반대다. 내겐 여기에서 오는 이질감이 굉장히 컸다. 공연 연습을 보기 전까진.

배우들의 연습을 처음 보던 날, 누구에게 말할 기회는 없었지만 근 몇 년간 딸아이가 태어난 날을 빼고 그렇게 뭉클한 날이 있었을까. 아무리 공을 들여 번역해 만든 대본이라고 해도 내게 그 대사들은 흰 종이 위에 검게 존재하는 무미건조한 무생물 같은 것이었다. 아무리 입말에 가깝게 쓴다고 해도 감성적인 측면에서도, 사전적인 정의로도 그것이 입말은 아니었다. 그저 텍스트에 불과했다. 그런 대사들이 배우의 입 밖으로 나오면서 살아 뛰어다니는 모습을 목격한다는 것은 15년간 자막만 만져온 나에겐 충격적인 경험이었다. 감동적이고 뭉클한 경험이었다. 심지어 생명 창조의 과정처럼 보이기까지 하는 저 숭고한 행위의 시작점이 내 부박한 대본이라는 게 그렇게 창피할 수가 없었다.

물론 처음 내가 탈고한 대본과 똑같은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생각보다 많은 부분이 바뀌었다. 노래 연습이 이어지는 과정에서도 가사가 많이 다듬어졌고 연출부에서도 여러 가지 고려로 대사나 설정을 수정했다. 또 마지막으로 가장 중요하게 배우들의 해석이 더해졌다. 작업을 처음부터 끝까지 혼자 책임져야 하는 자막 작업에서는 이런 과정을 상상할 수가 없다. 그리고 만약 이렇게 내 대본이 임의로 수정된다면 불쾌하게 생각해야 할 일이다. 그런데 이번엔 불쾌감은 커녕 경외심이 먼저 들었다. 과연 지금 저 배우가 하고 있는 대사와 노래가 내가 쓴 그 단순한 문장에서 시작된 것인지 의심스러울 지경이었다. 음악감독과 연출가의 역량이 끼치는 영향이 이렇게나 거대하구나 싶었다. 하지만 가장 놀라웠던 것은 배우들이 그 지점에서 멈추지 않고, 한 걸음 더 나아간다는 것이다. 최종안으로 나온 무채색의 대사는 배우들의 해석에 따라 저마다 각자의 색이 덧칠해졌다. 대사 속 단어나 표현을 수정하기도 하고 자신만의 대사를 추가해서 캐릭터를 발전시키는 것은 물론, 내용만 아니라 톤과 표정, 몸짓 등으로도 대사에 다양한 색을 입힌다. 백 명의 배우가 있다면 백 개의 다른 대사가 탄생할 수 있다는 뜻이겠다. 이건 오로지 텍스트만 붙들고 씨름해 왔던 번역가에겐 정말이지 소름 돋는 광경이다. 나는 죽으나 사나 글을 짜내어 캐릭터를 표현할 수밖에 없는데 저들은 캐릭터를 표현할 방법이 저렇게나 많다니. 얼마나 잠재력이 큰 작업인가.


라이선스 뮤지컬 대본 번역 작업의 흥미로운 점은 여기에 있다. 영화 자막을 작업하는 것과는 달리 팀으로 일한다는 것. 음악, 연출, 연기처럼 내가 가지 못하는 영역이 있더라도 내 동료들이 -감히 동료라 부를 수 있다면- 그 영역에 들어가 자신의 몫을 해내기에 나도 더 큰 가능성과 비전을 꿈꿀 수 있다. 그렇게 여럿의 재능이 뭉쳐져 시너지를 내고 궁극적으로는 하나의 작품을 완성한다. 정말 짜릿한 경험이다. 지금 나는 공연을 보면서 배우들마다 어떤 대사를 어떻게 하는지 스승의 칠판을 보듯이 뚫어져라 쳐다보며 공부하고 있다. 매일같이 극장에 가서 남의 자막을 보고 받아 적고 분석하던 새파란 시절과 비슷해서 오랜만에 들뜨고 설렌다. 내 스승이 될 사람들이 저렇게 많고 배울 것도 이렇게 많다니 참 즐거운 일이다.

하나 아쉬운 점은 번역가의 재량이 어디까지인지, 권한은 어디까지인지 파악하지 못해 대본을 발전시키는 과정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지 못한 것이다. 상의하고 싶은 게 많았지만 섣불리 연락을 못 했다는 배우들의 말을 너무나 늦게 들었다. 나도 그들도 서로의 사정을 몰라 먼저 손을 못 내밀었다는 점이 아쉽다. 훗날 또 운이 좋아 이렇게 좋은 작품을 만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그런 운이 찾아온다면 지금보다는 더 유연하게 작업할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다.

<썸씽로튼>을 말할 때마다 늘 ‘좋은 작품’이라고 하는데 입에 발린 말이 아니라 진심이다. 얼핏 우스꽝스럽고 재미만 추구한 작품으로 보일 수도 있지만 이렇게 훌륭한 대본을 보는 경우는 그리 많지 않다. 뮤지컬 대본을 많이 본 것은 아니지만 영화 대본을 수백 권 본 경험으로 말하자면 이렇게 스마트한 대본은 드물다. 대본 관련 작업을 하는 사람들은 흔히들 쉽게 ‘깔끔한 대본’이라는 표현을 사용한다. 깔끔하다는 것은 기본적으로 문장의 수준이 굉장히 높다는 뜻이다. 명료하고, 위트 있고, 핍진성이 좋고, 군더더기 없는 문장. <썸씽로튼>이 그렇다. 보통 글쟁이가 쓴 문장들이 아니다. 특히 극 전체 곳곳에 숨어 있는 셰익스피어 인용과 응용, 뮤지컬 패러디는 상상을 초월한다. 참 많은 패러디가 등장해서 지레 겁을 먹는 관객들도 있지만 그렇게 두려워할 만한 것은 아니다. 더 많이 웃고 싶다면 『햄릿』의 캐릭터와 기본적인 줄거리 정도만 알고 가도 상관없다. 그렇게 한 번 보고 나면 무엇을 패러디했는지 찾고 싶어서라도 극장을 다시 찾게 될 것이다. <썸씽로튼>이라는 이렇게 좋은 작품을 만나게 되어 기쁘고 감사할 따름이다.

*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204호 2020년 9월호 게재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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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황석희 번역가
사진제공 | 엠씨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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