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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DD NOTE] <주디>, 세상 끝, 무지개 너머의 집을 찾아서 [No.200]





<주디>
세상 끝, 무지개 너머의 집을 찾아서


이웃집 소녀 탄생에 얽힌 어두운 비밀

브리티시 록 역사의 악명 높은 문제아 피트 도허티는 영국군 장교였던 아버지의 잦은 부대 이동 때문에 한곳에 정착하지 못하는 불안한 성장기를 보냈다. 그는 훗날 자신과 마찬가지로 히피 공동체를 떠돌면서 자란 친구 칼 바랏을 위해 ‘You're My Waterloo’라는 곡을 쓴다. 두 사람이 공유한 감정과 기억, 비밀스런 습관, 그리고 서로만이 온전히 의미를 이해하는 암호들로 채워진 이 연가에서 가장 로맨틱한 구절은 주디 갈란드와 토니 핸콕이 호명되는 순간이다. ‘그렇지만 너는 주디 갈란드가 아니야. 너도 나처럼 집이란 걸 가져본 적이 없잖아. 하지만 나도 토니 핸콕은 아니니까. 우린 새벽이 올 때까지 함께 까마귀에게 돌을 던질 거야’라는 노랫말에는 고통과 결핍이 너와 나를 이어주는 연결 고리가 되었을 때의 그늘진 기쁨이 배어 나온다.

영화 <주디>는 ‘You're My Waterloo’에서 뉴 밀레니엄 런던의 두 소년이 꿈꾸지만 닿지 못할 이상의 존재로 그려진 것에 대한 주디 갈란드의 대답 같은 작품이다. 강아지 토토를 안고 마녀와 마법사의 세계에서 헤맨 끝에 캔자스 시골집으로 돌아와 ‘역시 집만 한 곳은 없어’라고 기쁘게 말하던 양갈래 머리 소녀로 전설이 된 디바는 이 영화 속에서 몇 번이나 거듭해서 말한다. 자신에겐 집이 없다고.

주디 갈란드, 본명은 프랜시스 검. 미국 미네소타 촌구석에서 보더빌 배우 출신인 부부의 세 자매 중 막내로 태어났다. 아버지는 다정했지만 지역 사회에서 공공연하게 알려진 게이로(주디 갈란드는 1922년생이다. 어떤 시대였는지는 우리 모두 알고 있다) 일찍 세상을 떠났으며, 어머니는 배우로서도 결혼 생활에서도 철저하게 실패한 자신의 인생을 딸의 성공으로 보상받고 싶어 하는 사람이었다. 사랑스런 자매들은 검 시스터즈라는 이름으로 함께 무대에 섰고 그중에서 눈에 띄게 재능이 있던 주디 갈란드는 당대 최고의 할리우드 스튜디오 MGM에 발탁된다. 하지만 아역을 맡기엔 애매했던 열세 살이라는 나이 때문에 배역이 제한적이었는데 딸의 성공에 모든 것을 건 어머니는 그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주디 갈란드를 유력자들의 술자리와 침실에 밀어 넣는다.

<오즈의 마법사>에 캐스팅된 후로 사랑스런 이웃집 소녀의 이미지에 맞게 작고 가냘픈 몸을 유지해야 했던 주디 갈란드는 매일 닭고기 스프 한 접시와 담배 네 갑, 그리고 암페타민을 강요당했다. 아역 배우, 특히 여배우의 인권이 처참하게 유린당하던 시절이었다. 18시간 넘는 촬영 시간을 버텨야 했고, 식욕을 떨어뜨리는 암페타민의 부작용으로 잠들지 못해 괴로워할 때는 당연하다는 듯 수면제 처방이 이루어졌다.

누구라도 인정할 수밖에 없는 엄청난 재능을 가지고 있었지만, 출신 배경이 보잘것없고 제대로 된 양육자의 보호를 받을 수도 없었다. 같은 스튜디오 소속의 절세미인들과 비교해 ‘미운 오리 새끼’라는 별명으로 불렸고 최소한의 식욕이나 수면욕조차 통제당했다. 어린 여자아이가 주인공이라는 것을 못마땅하게 여긴 성인 배우들에게 노골적인 괴롭힘까지 당하는 혹독한 성장기를 보낸 결과는 151센티미터에 그친 덜 자란 키와 평생을 괴롭힌 끔찍한 약물 중독, 그리고 처참하게 망가진 자존감이었다.

불행한 결혼 생활이 남긴 고통

누구든 다정하게 대해 주는 사람이면 금세 마음을 줬고 사랑하면 결혼하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주디 갈란드는 평생 다섯 번 결혼해서 네 번 이혼했다. 전처와의 이혼이 마무리되지 않은 상태에서 주디 갈란드를 만났던 첫 남편은 그녀에게 낙태를 강요했고 그 기억은 그녀를 평생 동안 괴롭혔다. 할리우드 역사상 가장 뛰어난 뮤지컬 영화 감독 빈센트 미넬리와의 두 번째 결혼에서는 그녀 못지않은 재능을 지닌 딸 루이자 미넬리를 낳았고 대표작 <세인트 루이스에서 만나요>도 그 시절에 탄생했다. 하지만 애초에 동성애자였던 남편의 불륜으로 결국 이혼했다. <주디>에서도 비중 있게 등장하는 세 번째 남편과의 사이에서 남매를 낳았지만 공연 프로모터였던 그는 상습 도박으로 주디 갈란드의 재산을 탕진한다. 하지만 의붓딸 루이자 미넬리의 배우자와 불륜 관계를 맺었던 그녀의 네 번째 남편에 비하면 그 정도는 수용 가능한 무난한 문제로 보일 지경이다.

오스트레일리아 출신의 무명 가수 피터 앨런은 주디 갈란드의 투어 공연에서 오프닝 무대를 선 인연으로 루이자 미넬리와 연인이 된다. 주디 갈란드의 강력한 반대에도 불구하고 성사된 두 사람의 결혼은 끔찍한 추문으로 파탄이 나지만 둘은 1967년부터 7년 동안 법적 혼인 상태를 유지한다. 좀처럼 이해하기 쉽지 않은 두 사람의 관계는 루이자 미넬리에게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을 안겨준 뮤지컬 영화 <카바레>(1972)를 연상시킨다. 바이마르 공화국 최후의 날이 다가오는 우울한 베를린의 킷캣클럽에서 루이자 미넬리가 연기했던 미국인 댄서 샐리는 동성애자인 영국인 브라이언, 그리고 양성애자인 귀족 막시밀리안 폰 호이네와 함께 기묘한 삼각관계에 빠진다. 이 혼란스러운 러브 스토리에는 그녀의 실제 삶이 묘하게 투영된다. 피터 앨런은 훗날 자신이 쓴 곡으로 그래미와 아카데미 주제가상을 받아 성공을 거두는데, 1992년 에이즈 합병증으로 세상을 떠나는 그의 이름을 2020년까지 기억하게 만든 것은 그 파란만장한 일생을 담은 주크박스 뮤지컬 <보이 프롬 오즈>이다.

애초에 사회 풍자물로 쓰였지만 ‘뮤지컬’ 영화 <오즈의 마법사>는 미국식 낙관주의의 정수를 담고 있는 작품이다. 저 무지개 너머를 꿈꾸며 먼 길을 걷다가 소명을 이루고 집으로 돌아올 수 있을 것이라는 완벽한 해피엔딩은 미국이 정치적으로나 문화적으로나 세계를 제패했던 황금기의 표상이 되었다. 하지만 하늘이 내린 재능을 타고났으면서도 끔찍하게 학대받고 착취당한 끝에 망가진, 그럼에도 무시무시한 힘으로 무대에서 노래했던 사람, 한 여성의 삶은 그 영화에 전혀 다른 깊이와 의미를 더한다.

<주디>는 놀랍거나 새로운 영화는 아니다. 하지만 반세기 전 주디 갈란드가 남긴 무대를 보면서 ‘사람이 어떻게 저런 목소리로, 저런 방식으로 노래를 부르지?’라는 물음을 떠올렸을 이들에게 납득할 만한 답을 주는 영화이다. 그 노래에, 그리고 삶에 고통의 신비가 있다.


*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200호 2020년 5월호 게재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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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김영주 공연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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