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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W IN NEW YORK]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 스냅, 스냅, 킥 앤드 점프! [No.199]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
스냅, 스냅, 킥 앤드 점프!


이보 반 호브의 첫 브로드웨이 뮤지컬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가 10여 년 만에 브로드웨이에 돌아왔다. 1957년에 초연된 작품은 당시 청소년 범죄가 사회 문제로 떠오른 점에 착안해 셰익스피어의 『로미오와 줄리엣』을 1950년대 뉴욕으로 옮겨와 각색했다. 뉴욕의 어퍼 웨스트 사이드 거리를 배경으로 쟁탈전을 벌이는 유럽계 이민자 갱과 푸에르토리코 갱의 갈등 사이에서 토니와 마리아의 사랑이 희생되는 이야기다. 사실 뮤지컬 팬들에게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는 스냅, 스냅, 킥 앤드 점프같이 발레 동작과 재즈의 움직임을 결합한 프롤로그의 안무로 인상을 남겼다. 1961년 제롬 로빈스와 로버트 와이즈가 공동으로 연출을 맡은 동명의 영화 또한 많은 이들에게 로빈스의 안무를 각인시키는 역할을 했다. 심지어 영화를 포함해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의 주요 리바이벌 공연들은 모두 로빈스의 안무를 그대로 따랐을 정도로 그 정체성이 확고했다. 그러나 이번 리바이벌에서 오리지널 안무를 기대한 팬이라면 아쉬울 수도 있겠다. 로빈스의 안무를 쓰지 않는 최초의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 브로드웨이 프로덕션이기 때문이다.

이런 과감한 결정의 이면에는 벨기에 출신의 연출가 이보 반 호브가 있다. 한국 관객에게는 연극 <오프닝 나이트>, <파운틴 헤드>, <로마 비극> 등으로 알려진 반 호브는 고전 희곡을 급진적으로 재해석하거나 소설이나 영화를 무대화한 작업으로 잘 알려진 인물이다. 그가 가장 미국적인 장르인 뮤지컬, 그것도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 리바이벌의 연출을 맡는다는 사실은 일찍부터 화제가 됐다. 반 호브는 작품이 지닌 동시대성을 강조하기 위해서 오랫동안 작품의 상징 같았던 제롬 로빈스의 안무를 바꾸기로 결단을 내렸다. 그 결과, 미니멀한 동작과 기하학적 공간 구성으로 유명한 벨기에 출신의 현대 무용가 안느 테레사 드 케이르스마커르가 합류해 일상적이고 자유분방한 제스처와 파워풀한 군무 사이를 오가는 동작을 통해 십 대 갱들의 에너지를 생생하게 보여준다.

이번 공연에서 달라진 것은 안무만이 아니다. 반 호브는 제트의 멤버 구성이 ‘미국이라는 나라의 선집(Anthology)’과도 같다는 대본의 묘사를 재해석해 그간 백인 배우가 연기해왔던 제트의 패거리를 동시대 미국 사회를 반영한 다인종으로 캐스팅했다. 그리고 폭력의 연쇄성과 더불어 증오가 낳는 폭력의 비극적인 결과를 부각하기 위해 마리아가 부르는 ‘I Feel Pretty’를 생략하고 중간 휴식 없이 105분으로 러닝 타임을 단축했다.



미니멀한 무대, 사실적인 세트

처음 극장에 들어서면 텅 빈 무대가 관객을 맞이한다. 전주가 시작되면 유럽계 이민자 갱인 제트 멤버들이 등장해 무대 하수에 일렬로 늘어서며 객석을 정면으로 응시한다. 이내 무대 벽을 꽉 채운 화면에 배우의 얼굴이 하나씩 클로즈업으로 소개된다. 거대하게 비치는 반항적인 표정과 온몸의 문신이 적대적인 관계에 있는 푸에르토리코 갱 샤크 멤버들뿐 아니라 관객에게도 ‘여기는 우리 구역이니 얼씬대지 말라’고 말하는 듯하다. 소개를 끝낸 제트 멤버들이 음악에 맞춰 천천히 몸을 건들대기 시작하면서 본격적으로 이야기가 전개된다. 이 프롤로그 장면은 이번 프로덕션의 전반적인 톤을 압축적으로 보여준다.

미니멀하게 구성된 무대는 살짝만 틀어보면 지나칠 정도로 사실적이다. 이야기의 공간적 배경이 거리에서 실내로 이동하면, 스크린의 일부인 미닫이문이 열리면서 숨겨진 실내 세트가 드러난다. 안쪽 공간에는 토니가 일하는 구멍가게와 마리아가 일하는 드레스 숍이 각각 정교하게 재연되어 있다. 반 호브의 오랜 협업자인 무대디자이너 얀 베르스베이펠트가 디자인한 이 공간은 무대보다 영화 세트에 가까우며, 처음부터 관객이 스크린을 통해 볼 수 있도록 설계됐다. 심지어 마리아의 아파트는 아예 무대 밖 드레스 룸에 위치해 영상을 통해서만 보인다. 세트 안으로 배우들이 들어가면 곳곳에 설치된 카메라로 촬영되는 영상과 배우들이 직접 촬영하는 영상이 화면에 중계되는데, 배우의 동선에 따라 서로 다른 카메라의 시선이 실시간으로 교차 편집되어 영화를 보는 느낌이 든다. 이런 연출은 반 호브와 비디오 디자이너 루크 홀스의 섬세함과 기술적 완성도에 감탄하게 되는 지점으로, 인물들 사이의 내밀한 교감을 카메라의 시선을 통해 가까이에서 본다는 만족감도 느낄 수 있다. 이를테면, 거울을 사이에 두고 토니와 마리아가 마주 보고 ‘One Hand, One Heart’를 부르며 사랑을 속삭이는데, 두 배우의 숨이 거울에 하얀 김으로 서린다. 이것은 1000석 규모의 극장에서 카메라 없이는 포착하기 어려운 장면인 데다 심지어는 아름답기까지 하다. 하지만 배우들이 스크린 뒤로 들어가는 순간부터는 무대 에너지가 사라지고 관객은 배우와 물리적으로 단절된다.



스크린 속 배우와 무대 위 배우

뮤지컬 장르에서 인물이 노래를 부르고 춤추는 건 대부분 표현의 한계에 부딪혔을 때다. 일상적인 언어로 표현하기 어려운 감정과 에너지를 표출하기 위해 노래와 춤이 개입된다. 노래와 춤을 통해 인물의 감정이 증폭되고, 순간적으로 확대되는 것이 뮤지컬 장르가 지닌 가장 큰 특징이다. 하지만 이번 프로덕션에서는 이러한 뮤지컬 장르의 문법이 전복된다. 인물이 사실적인 연기를 할 때는 스크린을 통해 실제보다 확대되어 보이고, 반대로 삼차원의 무대 공간에서 노래하고 춤출 때는 스크린에 압도되어서 오히려 축소되는 것이다. 심지어 화면에 거대하게 비치는 소품이 배우의 존재감을 위협하기도 한다. 한 예로 제트 멤버들이 ‘Cool’을 부르는 장면에서, 이들은 빨리 샤크 멤버들과 싸우고 싶어 안달 내다가 흥분을 주체하지 못해 춤을 춘다. 자유분방한 움직임이 절도 있는 안무로 전환되며 인상을 남겼지만, 배우들이 격렬한 춤을 추는 동안 화면에 세트 속 슬러시 기계가 이들의 몸집보다 크게 잡히는 상황은 좀 황당하다. 드 케이르스마커의 안무는 수직과 수평의 움직임을 절도 있게 교차시키며 제트와 샤크 사이의 대결 구도와 긴장감을 시각적으로 잘 드러낸다. 하지만 수십 명의 배우가 무대에서 춤추는 동시에 화면에 여러 앵글의 영상 이미지를 확대된 채로 오버랩하거나 크로스 페이드(두 장면이 서로 교차하면서 전 화면이 사라진 후 화면이 뚜렷하게 나타나는 화면 전환 기법)를 활용하는 연출은 안무에 온전히 집중하기 어렵다. 화면이 배우의 존재를 시각적으로, 물리적으로 끊임없이 압도하는 가운데 제트와 샤크에게 가장 위협적인 존재는 서로가 아니라 화면에 생중계되는 자신들의 확대된 이미지다.

또한 관객에게 상상력의 여지를 주지 않는다는 점에서 아쉬움을 남긴다. 패싸움 직전에 모두가 ‘Tonight’ 리프라이즈를 부를 때는 화면에 여러 개 영상이 동시 재생되고, 밤을 맞을 채비로 분주한 모습을 보여준다. 제트와 샤크의 멤버들은 각각 싸움 준비에 여념이 없지만 토니는 싸움을 말리러 가고 마리아는 토니를 기다리며 화사한 옷을 차려입는다. 이런 일련의 영상을 배경으로 제트와 샤크의 패거리가 대결하듯 일렬로 마주 보고 노래하면, 화면이 무대를 압도하면서 결국 관객의 주의를 분산시킨다. 이러한 연출의 의아함은 아니타와 마리아의 듀엣 ‘A Boy Like That/I Have a Love’에서도 나타난다. 처음 노래가 시작되면 사랑에 빠진 마리아를 질책하는 공격적이고 날 선 아니타의 목소리와 사랑을 노래하는 마리아의 아름다운 목소리는 평행선을 달리는 것만 같다. 두 사람이 다시는 함께 노래할 수 없을 것처럼 말이다. 하지만 사랑이라는 공통의 경험을 통해 후반부에서 두 여성은 동지가 되고, 같은 멜로디로 노래를 부른다. 공연에서는 노래하는 두 배우 뒤로 화면에 아니타와 마리아가 각자의 연인과 사랑을 나누는 과거의 장면, 피투성이 옷을 입은 토니가 도망치는 장면이 등장한다. 하지만 과거의 모습과 무대 밖 토니에게 초점을 맞춘 영상은 노래의 시점과 맞지 않을뿐더러 무엇보다 상상의 여지를 없애고 만다. 이런 이유로 아니타 역의 예세니아 아닐라와 마리아 역의 셔린 피먼텔은 독보적인 목소리와 존재감을 가졌음에도 영상 때문에 온전히 무대의 주인공이 되지 못한다. 결국 뮤지컬이라는 장르의 무대 언어를 충분히 활용하는 대신 화면을 통해 지나치게 이들의 감정을 상세하게 보여주려던 연출은 큰 아쉬움으로 남았다.

작품에서 가장 아름다운 장면은 스크린 사용이 절제되고 배우의 신체와 관객의 상상력이 그 자리를 차지하는 순간이다. 토니와 마리아가 입술이 맞닿을 것 같은 거리에서 다정하게 ‘Tonight’를 부르기 시작하면, 그 순간만큼은 무대와 뉴욕이 두 사람만의 세상처럼 보인다. 토니를 맡은 아담 파월의 목소리도 감미롭지만, 특히 피먼텔은 첫 음절을 부르는 순간 탄성을 자아낼 정도로 음색이 아름답다. 하지만 두 연인이 무대를 온전히 차지하는 것은 잠시뿐이다. 이내 제트와 샤크 멤버들이 천천히 걸어 나와 이들을 못마땅하게 지켜본다. 노래 속 토니와 마리아의 사랑은 해와 달과 별의 세계 속에 있는 것같이 아름답지만, 비가 내리는 거리에서 주변 사람들에게 에워싸여 있는 전체적인 모습은 위태롭다. 뒤이어 제트와 샤크의 무리가 다가와 토니와 마리아를 각자의 편으로 잡아당기면 둘은 서로에게서 점점 멀어진다. 하지만 두 사람을 떨어뜨려 놓는 외부의 힘에도 불구하고 토니와 마리아는 온 힘을 다해 자신들을 잡아당기는 무리를 질질 끌면서 서로에게 다가가 내일을 기약한다. 이들의 사랑이 얼마나 애틋한지, 그리고 제트와 샤크 사이의 적대감이 어떻게 이들을 가로막는지 가장 극적으로 시각화한 장면이라 볼 수 있다.

폭력에 대한 작품 속 폭력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에서 가장 두드러지는 주제는 토니와 마리아의 사랑을 좌절시키는 폭력이다. 따라서 폭력을 무대화하는 방식은 공연의 의미를 결정짓는 중요한 선택이 된다. 작품에서 폭력이 가장 극적으로 드러나는 순간은 물론 패싸움 장면이다. 패싸움을 하려고 제트와 샤크의 무리가 모이면, 화면이 꺼지고 무대 위에는 오로지 배우들만 남는다. 긴장감이 감도는 가운데 첫 번째 주먹이 날아가면서부터 무대에는 비가 내리기 시작해 작품이 끝날 무렵엔 모두가 흠뻑 젖게 된다. 예쁜 옷을 입고 외출 준비를 하던 마리아마저도 마지막 장면에서는 비에 젖은 채 치노의 총을 빼앗아 들고 “이제 나도 살인을 할 수 있어. 왜냐면 이제 나도 증오하게 되었으니까”라며 울부짖는다. 여기서 비는 모두가 가해자이자 피해자가 된 상황이자 누구도 이 폭력의 순환 고리에서 자유롭지 않다는 것을 보여주는 장치다.

하지만 더러 공연에서 폭력이 무대화되는 방식과 목적이 이해되지 않을 때가 있다. 앞서 언급했듯 이번 프로덕션은 시의성을 강조하며 사회 문제에 대한 의식을 공공연하게 드러내왔고 무대에서도 동시대와의 연결 고리를 만들려는 시도가 곳곳에서 엿보인다. 토니와 마리아가 ‘Somewhere’를 부르는 장면에서 이성애 커플들 가운데 동성 커플을 등장시켜 이성애 중심주의에서 탈피한다든가, 원작의 코믹 뮤지컬 넘버인 ‘Officer Krupke’에 영상을 통해 Black Lives Matter(흑인의 생명도 소중하다) 운동을 서브 텍스트로 제시하는 것이 그 예다. 그러나 동시대성과 시의성을 강조한 연출의 의도가 무색하게 이 작품의 젠더 감수성은 1950년대에 머물러 있는 것만 같다. 한 예로, 아니타가 제트 멤버들의 집단 강간에서 가까스로 탈출하는 장면이 고정된 카메라가 아닌 제트 멤버가 직접 휴대폰으로 촬영하는 영상으로 생중계되는 부분을 들 수 있다. 저항하지 못하는 아니타의 바지 속으로 누군가는 손을 넣고 누군가는 자기 바지를 내리는가 하면, 누군가는 익살스럽게 카메라에 브이 표시를 해 보이는 등 폭력이 가해자의 시선에서 찍은 휴대폰 영상으로 화면을 가득 채운다. 이 부분은 불필요하게 선정적인 데다 소셜 미디어에서 볼 법한 범죄 비디오를 가볍게 모방한 것처럼 보여서 불편함을 지울 수 없었다. 젠더 감수성은 다른 지점에서도 의심스럽다. 캐스트가 발표된 직후부터 온라인에서는 베르나르도 역할의 배우 아마르 라마사르에 대한 하차 요구가 빗발쳤다. 그가 뉴욕 시티 발레 내 성폭력 스캔들에 가해자로 연루된 적이 있기 때문이다. 계속되는 논란에도 리드 프로듀서인 스콧 루딘은 성명서를 내고 라마사르를 옹호하며, 캐스트를 교체할 의사가 없음을 밝혔다. 성폭력을 포함한 폭력의 순환을 문제 삼는 작품에 성폭력 가해 이력이 있는 배우를 캐스팅하는 것은 자기모순처럼 보인다.

많은 사람의 뇌리에 강렬한 ‘원본’의 이미지를 가지고 있는 모던 클래식의 재공연에는 큰 부담이 따르기 마련이다. 관객이 가지고 있는 원작에 대한 기억과 애정이 가혹한 평가의 기준이 되기 십상이기 때문이다. 이번 공연에서 가장 아쉬운 지점은 작품의 재해석보다는 반 호브의 개성을 보여주는 연출에 그쳤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이번 프로덕션의 의의는 그간의 리바이벌에서 한 번도 하지 못했던 시도를 통해 미래 공연에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 주었다는 데 있다. 리바이벌 공연이 항상 작품이 오리지널에 충실하기 바라는 것은 무리다. 공연은 박제된 전시품이 아니라 한 시대 안에서 아티스트와 관객이 함께 호흡하는 가운데 매번 재탄생하는 생물이기 때문이다. 올 연말에는 토니 쿠시너가 대본을, 저스틴 펙이 안무를, 스티븐 스필버그가 감독을 맡은 리메이크 영화가 개봉할 예정이다.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가 새로운 창작진의 손에서는 또 어떻게 재탄생하게 될지 궁금해진다.


*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199호 2020년 4월호 게재기사입니다.
* 본 기사와 사진은 “더뮤지컬”이 저작권을 소유하고 있으며 무단 도용, 전재 및 복제, 배포를 금지하고 있습니다. 이를 어길 시에는 민, 형사상 법적책임을 질 수 있습니다.

글 | 오한솔 뉴욕 통신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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