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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ULTURE PREVIEW] <파묻힌 아이>​, 한 가족에 일어난 비극 [No.199]





<파묻힌 아이>
한 가족에 일어난 비극


<트루 웨스트>의 작가 샘 셰퍼드의 또 다른 명작 <파묻힌 아이(Buried Child)>가 경기도극단에 의해 정식 라이선스 공연을 국내에 처음 선보인다. 국내에서는 흔히 ‘매장된 아이’라는 제목으로 간간이 학교 무대에 올랐던 이 작품은 샘 셰퍼드의 가족극 3부작 <기아 계급의 저주>(1977), <파묻힌 아이>(1979), <트루 웨스트>(1980) 중 대표작이다.




가족극 중심의 미국 희곡

현대 미국 연극은 <밤으로의 긴 여로>의 유진 오닐,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의 테네시 윌리엄스, <세일즈맨의 죽음>의 아서 밀러로부터 시작했다고 본다. 이들은 지성보다는 감성에 호소하는 낭만주의 희곡에서 벗어나 리얼리즘 계열의 작품들을 선보였다. 특히 이 세 작가들은 황폐해진 가족의 모습을 통해 미국 사회의 현실을 들여다보았다. 이러한 미국 가족극의 전통은 <누가 버지니아 울프를 두려워하랴>의 에드워드 올비와 샘 셰퍼드에게로 이어진다.
샘 셰퍼드가 현대 미국 희곡의 대표적인 가족극의 계보를 이어가고는 있지만 그의 작품은 전통적인 리얼리즘 계열의 작품과는 또 달랐다. 그는 현대 미국 연극의 전통을 이어받으면서도, 2차 세계대전 이후 1960년대 기존 연극 전통에 반항했던 리빙 시어터를 비롯한 실험극에서 자양분을 얻었다. 특히 그의 초기작에선 콜라주와 판타지, 퍼포먼스와 해프닝 등 실험극의 영향이 두드러진다. 후기작인 가족극 3부작에서는 초기작에 비해 실험적인 요소는 줄어들지만 여전히 이미지의 활용이 높고, 의도적으로 인과관계를 파괴한 플롯을 전개한다. <트루 웨스트>의 두 형제 오스틴과 리가 그렇듯 샘 셰퍼드의 인물들은 논리적으로 일관된 행동을 하기보다는 즉흥적이고 충동적으로 행동한다. <파묻힌 아이>에 등장하는 인물들 역시 행동의 동기를 알기 힘들고 충동적이고 폭력적이다. 샘 셰퍼드의 작품은 사실주의 극의 외형을 띠고 있지만 콜라주와 판타지 등의 실험극적인 요소가 결합하면서 그만의 사실주의 극을 선보인다.

샘 셰퍼드의 가족극을 사실주의 계열에 포함시키는 것이 의아할 수도 있을 것이다. 특히 <파묻힌 아이>에서는 도통 이해할 수 없는, 현실에서는 절대 만날 수 없을 것만 같은 가족들이 등장한다. 지나치게 시청각적 이미지를 강조한 연출이나 상징적이고 신화적인 내용은 기존의 사실주의 극하고는 거리를 둔다. 그럼에도 그의 작품을 사실주의에 포함시키는 것은 우리의 현실이 이성적으로 설명하기 힘들고 혼란스럽다는 인식에 기반하고 있기 때문이다.



샘 셰퍼드의 문제작

<파묻힌 아이>는 6년간 떠나 있던 빈스가 여자친구 셸리와 집에 돌아와 가족의 숨겨진 진실과 마주하는 이야기다. 빈스는 유쾌하고 자유분방한 셸리를 집에 들이는 것을 주저한다. 그곳은 할아버지와 아버지, 삼촌들이 함께 살았던 곳이다. 빈스는 뉴멕시코에 있는 아버지를 만나러 가는 길에 잠시 옛집에 들른다. 그런데 그곳에는 이미 아버지 틸든(윤재웅)이 와 있었다. 할아버지인 닷지(이찬우)는 정신이 온전하지 못해 보이고, 아버지 역시 마찬가지다. 더 이상한 것은 불과 6년 만인데도 할아버지와 아버지가 자신을 몰라본다. 한때는 그 지역에서 부러움을 사던 이 가족에게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일까. 샘 셰퍼드는 작가와 연출로 10개의 오비상을 받았다. <파묻힌 아이> 역시 오비상 수상작이자 그에게 퓰리처상을 안겨준 작품이다.

<파묻힌 아이>는 총 3막으로 구성됐다. 1막은 할머니 핼리(예수정)와 할아버지 닷지의 알 수 없는 대화를 통해 어딘지 이상하고 소통이 이루어지지 않은 가족의 모습을 보여준다. 큰아들 틸든은 뒷마당에서 옥수수를 따와 다듬고, 핼리와 닷지는 뒷마당에서 지난 30년간 아무것도 자라지 않았다고 한다. 2막은 빈스와 셸리가 방문하여 닷지와 틸든을 만난다. 빈스는 가족들이 자신을 알아보지 못하자 혼란스러운 상황을 정리하기 위해 잠시 자리를 비운다. 닷지는 빈스의 여자친구인 셸리에게 폭언을 하고, 틸든은 성적 관심을 보인다. 의족을 한 틸든의 동생 브래들리(박인배)가 등장해 공포스런 분위기는 극에 달한다. 3막은 하루가 지나고 안정을 찾은 모습이 그려지며, 이방인인 셸리에게 가족이 감춰왔던 비밀이 조금씩 노출된다. 이성을 잃은 채 되돌아온 빈스가 술병을 집어던지며 아버지와 삼촌을 제압하고 이 집안의 새로운 가장이 된다.

극의 내용을 요약하면서도 이게 도대체 무슨 이야기인가 싶을 정도로 일관성 있는 사건의 전개나 인물의 동기는 찾아보기 힘들다. 작품은 보는 내내 무수한 질문들을 남긴다. 빈스는 왜 집으로 되돌아온 것인가. 잠시 동안 자리를 비운 빈스에게 어떤 일이 일어난 것인가. 왜 가족들은 빈스를 알아보지 못하는가. 이 가족들에게 일어난 일은 정확히 무엇인가. 그것은 정말 일어난 일인가. 이러한 합리적 의심에 작품은 명확한 설명을 하지 않는다. 어긋난 퍼즐을 맞추는 것이 아니라 그 어긋난 상태를 감각적으로 느끼게 하는 것이 셰퍼드 작품의 목적이기 때문이다. <파묻힌 아이> 초연 연출가 로버트 우드러프는 이렇게 말한다. “셰퍼드의 작품은 애거서 크리스티 유의 합리적인 해결을 원하는 것이 아니며, 오히려 이에 정면으로 도전하려고 한다. 그는 이성적 질서와 그에 따른 예상은 오늘날 삶의 모습을 설명하는 데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본다.”

셰퍼드는 유진 오닐 이후 미국 극작가들이 주로 관심을 가졌던 가족 간의 갈등, 죄의 문제, 미국적 가족의 붕괴를 그만의 방식으로 다루고 있다. 그의 가족 3부작 중 마지막 작품인 <트루 웨스트>가 국내에서 여러 차례 소개된 반면, <파묻힌 아이>는 이야기나 인물의 모호함과 불편한 소재로 인해 그동안 제대로 소개된 적이 없다. 경기도극단의 예술감독으로 부임한 한태숙 연출가는 첫 작품으로 <파묻힌 아이>를 선택했다. 1970년대 붕괴된 미국의 가족 이야기가 지금 우리에게 어떤 이야기를 들려줄 수 있을까. 한태숙 연출가는 왜 이 작품을 선택했을까. 궁금증은 오는 5월 무대에서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5월 21~31일
경기아트센터 소극장


* 이 글은 두 편의 논문, 변창구, <1960년대 실험극 이후의 미국 사실주의 연극>(외국문학 1995, 2월 호), 김인표, <샘 셰퍼드의 가족극 삼부작 연구>(현대영미어문학 23호, 2005년 5월 호)를 참고했다.

*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199호 2020년 4월호 게재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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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19의 확산을 막기 위한 '사회적 거리두기' 권고에 따라 해당 공연은 9월로 연기되었습니다.

글 | 박병성
사진제공 | 경기도극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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