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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AFF] <아이다>를 이끈 숨은 공신들 [No.197]





<아이다>를 이끈 숨은 공신들

2005년 처음 국내 무대에 오른 <아이다>가 이번 시즌 공연을 끝으로 관객과 작별한다. 이집트에 포로로 잡혀온 누비아 공주 아이다와 이집트 장군 라다메스의 사랑을 그린 이 작품은 대규모 세트와 조명, 의상, 그리고 그 안에서 춤추는 배우들의 모습이 조화를 이루는 아름다운 무대 미학으로 사랑받았다. <아이다>의 영광 뒤에는 이 작품과 운명을 함께해 온 숨은 공신들이 있다. 지난 15년간 다섯 시즌 공연에 빠짐없이 참여한 김재홍 제작무대감독, 백경진 의상슈퍼바이저, 문병권 국내 협력안무가가 바로 그들이다. 대단원을 앞둔 지금, 누구보다 열렬히 <아이다>를 사랑하는 세 명의 스태프가 한자리에 모여 지난 추억을 더듬어보았다.

최고를 위한 최선

<아이다> 초연은 한국 최초로 브로드웨이 무대와 의상을 공수해 와서 화제가 됐다. 초연을 준비하면서 어려운 점은 없었나?

김재홍: 디즈니 시어트리컬 프로덕션에서 콜링 스크립트(무대감독이 언제 어떤 큐 사인을 보내야 할지 쓰여 있는 대본)와 해외 공연 실황 영상을 보내줘서 그걸 보고 공부했다. 문제는 스크립트는 영어, 영상 속 배우들이 쓰는 언어는 독일어였다는 거다. 공연도 낯선데 언어까지 낯설어서 사전을 뒤져가며 큐 포인트를 체크하는 데만 한 달이 걸렸다. 공연 규모가 크다 보니 연습도 각각 다른 세 곳에서 진행됐다. 네 명의 무대 감독이 장면, 안무, 음악 연습실 세 곳으로 흩어져서 연습 일정에 맞게 배우들을 인계하고 필요한 소품을 운반했다. 소품을 들고 대학로 거리를 뛰어다니고, 배우들이 제시간에 연습실에 도착하지 않으면 다른 연습실에 있는 팀원에게 전화로 ‘그쪽 연습 아직 안 끝났어? 배우들 빨리 보내줘!’라면서 재촉하던 기억이 선하다.

백경진: <아이다>는 내가 처음 참여한 라이선스 공연이었다. 해외 공연 영상을 처음 봤을 때는 의상 체인지가 많고 갈아입는 속도도 너무 빨라서 놀랐다. 하지만 우리 의상 팀원들도 만만치 않았다. 일을 어찌나 잘했던지, 해외 제작진이 더는 알려줄 게 없다며 원래 머물기로 했던 시기보다 일주일 더 빨리 떠났다. (웃음)

문병권: 나는 초연 당시 앙상블로 참여했다. 대학에서 무용을 전공했기 때문에 뮤지컬은 <아이다>가 처음이었다. 당시 오디션은 지금까지도 배우들 사이에서 회자될 만큼 재미있었는데, 평가받는 자리라기보다 함께 즐기는 자리 같았다. 협력안무가인 트레이시가 적극적으로 안무 지도를 해줬고, 지원자들도 서로에게 박수를 보내며 응원했다. 떨어져도 후회 없는 오디션이라고 생각했는데 감사하게도 합격해서 초연에 참여할 수 있었다. 그다음 시즌인 2010년까지 앙상블로 출연했고, 2012년부터 국내 협력안무가를 맡았다.

각자의 파트에서 느끼기에 <아이다>의 남다른 점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김재홍: 세트와 조명 전환이 음악에 딱 맞게 이뤄져야 하는 작품이라 무대감독 입장에서는 한순간도 긴장을 놓을 수가 없다. ‘Another Pyramid’와 ‘My Strongest Suit’는 한 곡 안에 담긴 조명 큐가 50여 개가 넘는다. 이때 타이밍을 조금만 놓쳐도 실수가 탄로난다.

백경진: 퀵체인지가 많다 보니 의상 팀원도 많이 필요하다. 현재 나를 포함해 모두 12명이 일하고 있다. <아이다>는 초연 때 브로드웨이에서 공수해 온 의상을 대부분 그대로 쓰고 있기 때문에 옷감이 상하지 않도록 꼭 손으로 세탁한다. 그럼에도 격한 안무 때문에 의상이 손상되는 일이 잦아 끊임없이 수선이 필요하다,

문병권: 앙상블 때는 내가 그 손상의 주범이었다. 열심히 바닥 슬라이딩을 하다 보니 그만. (웃음) <아이다>는 앙상블이 다른 작품보다 훨씬 더 땀 흘려 춤을 춰야 하는 작품이지만, 그럼에도 배우들에게 무척 사랑받는다. 앙상블 배우들이 드라마적으로 감정에 불을 지피는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한 번 이 작품에 출연한 배우는 계속해서 참여하는 경향이 있다. 공연을 거듭해도 매번 새로운 발견을 하기 때문에 질리지가 않는다. 고전 소설은 여러 번 읽어도 그때마다 새로운 생각 거리를 안겨주지 않나. <아이다>가 바로 그렇다.


<아이다>의 무대·의상·안무에 숨은 재미있는 비밀 한 가지씩 알려달라.

김재홍: 아이다와 라다메스가 갇히게 되는 무덤 입구가 카메라 조리개처럼 닫히는 걸 보고 신기해하는 관객이 많다. 사실 원리는 꽤 단순하다. 우선 천장에서 머리막이 내려오고, 무대 양옆에서 다리막이 밀려 나오면서 삼면이 가려진다. 마지막으로 무덤 세트 아래서 가림판이 올라오는데, 타이밍이 정확하게 맞아떨어지면서 마치 사면에서 조리개가 닫히는 것처럼 보이게 된다. 이때 무덤 안쪽에만 조명이 밝혀져 있고, 전체 무대는 어둠에 쌓여 있기 때문에 객석에서는 가림막의 움직임을 정확히 알아차리기 힘들다.

백경진: 이집트 공주 암네리스의 의상은 모두 고급 실크 소재로 만들어졌다. 하지만 <아이다>에서 가장 귀한 옷은 아이러니하게도 아이다의 누더기 예복이다. 이 옷은 서로 다른 무늬의 실크 조각을 일일이 수작업으로 이어 붙여 만든 것으로, 초연 당시 브로드웨이에서 딱 한 벌만 보내줬다. 그때 받은 옷을 지금까지 사용하고 있는데, 수선을 거듭해서 지금은 아주 묵직하다. 알고 보면 고가인 의상이 또 있다. 바로 파라오의 금관인데, 이 금관은 실제로 순도 99%의 금을 얇게 덧씌워 만들어졌다.

문병권: <아이다>에 출연하는 앙상블은 여자 여덟 명, 남자 여덟 명으로 총 열여섯 명이다. 이렇게 말하면 생각보다 적은 숫자에 놀라는 관객이 더러 있다. 이는 각각의 앙상블이 누비아인과 이집트인을 오가며 연기하기 때문이다. 뮤지컬에서는 보통 앙상블이 여러 캐릭터를 소화하지만, <아이다>에서 그 변신이 더욱 돋보이는 이유는 역할이 바뀔 때마다 전혀 다른 스타일의 춤을 소화하기 때문이다. 노예들은 아프리카 타악기 리듬에 맞춰 원초적인 춤을 춘다. 반면 조세르의 심복들이 추는 춤은 날카롭고 절제된 움직임이 특징이다. 이런 점 때문에 오디션을 볼 때 단순히 춤을 잘 추는 배우가 아니라 주어진 상황과 감정에 맞게 움직임을 표현할 줄 아는 배우를 뽑는다.

공연 도중 가장 긴장되는 순간은 언제인가?

김재홍: 배우가 와이어를 타고 공중에 매달려야 하는 목욕탕 장면이 가장 조심스럽다. 공중에서 수영을 해야 하는 두 배우는 연습 기간에도 여러 번 극장에 와서 플라잉 연습을 한다. 또한 이 장면에서 스팀을 사용해 목욕탕에서 김이 모락모락 나는 것처럼 보이게 만드는데, 잘못하면 바닥에 물이 고여서 배우들이 춤을 추다가 미끄러질 수 있기 때문에 잘 체크해야 한다. 만약 공연 중 앙상블 배우들이 수건으로 바닥을 닦는 모습을 보게 된다면, 그건 연기가 아니라 실제로 열심히 물기를 닦고 있는 것이다.

백경진: 아무래도 ‘My Stronget Suit’ 장면이 가장 조마조마하다. 목욕탕 장면부터 암네리스의 패션 쇼, 이어지는 연회 장면까지는 그야말로 쉴 새 없이 의상 퀵체인지가 이뤄진다. 무대 바로 뒤에서 배우 한 명당 의상 크루가 세 명씩 달라붙어 20초 만에 옷을 갈아입힌다. 그래서 사전에 배우와 크루가 손발이 척척 맞을 때까지 퀵체인지 연습을 반복한다.

문병권: 특정 장면에서만 긴장하지는 않지만, 안무 연습 때 가장 공을 들이는 장면은 ‘The God Love Nubia’다. 노예들이 무대에 등장할 때 전체적으로 빈 공간이 없어야 하는 동시에, 아이다가 그들 한 명 한 명과 교감하는 모습이 잘 드러나야 하기 때문이다. 같은 춤을 춘다고 해도 아무 생각 없이 움직이는 것과 이유를 생각하며 움직이는 것은 천지 차이다. 단순히 정해진 위치에서 정해진 동작을 취하는 게 아니라, 절망감에 무릎 꿇은 노예들이 다시 일어나기까지 감정의 흐름을 이해해야 한다. 배우들과 소통하며 그 움직임의 이유를 차근차근 찾아 나가는 과정이 쉽지 않지만 그만큼 재미와 성취감을 느낀다.

영원히 기억될 순간

<아이다>에서 가장 좋아하는 장면은 무엇인가?

문병권: 가장 좋아하는 군무 장면은 ‘Dance of the Robe’다. 이 장면에서 누비아 노예들이 다 함께 아이다의 이름을 부르짖으며 지도자가 되어달라고 호소하는데, 배우들이 있는 힘껏 에너지를 쏟아내야만 감동을 줄 수 있다. 앙상블로 무대에 서던 시절, 이 장면에서 최선을 다해야 오늘 공연을 잘 해냈다는 충족감이 들곤 했다.

백경진: 나는 앙상블이 단체로 등장할 때, 배우 개개인의 의상 색이 하나의 멋진 그림을 만들어내는 게 좋다. ‘Dance of the Robe’ 장면에서 갈색 옷을 입은 누비아인들이 춤을 추고 사라지면 분홍빛 옷을 입은 여인들이 빨래 바구니를 머리에 이고 나타나고, 이어서 붉은 옷을 입은 이집트인들이 등장한다. 마치 책장을 한 장씩 넘기면서 멋진 그림을 감상하는 느낌이다.

김재홍: 난 마지막에 막이 걷히고 첫 장면에서 본 박물관이 다시 나타날 때가 좋다. 숨 가쁘게 공연을 이어오다가 그 장면에 도달하는 순간 느껴지는 카타르시스가 있다. 마라톤 선수가 장거리 코스를 완주하고 다시 스타디움에 들어설 때 이런 기분이지 않을까. 관객들 역시 이 장면에서 카타르시스를 느끼는 것 같다. 협력연출가 키스 배튼이 초연 때 객석에 앉아 공연을 보다가, 이 장면에서 막이 걷히자마자 관객들이 와 하고 탄성을 터트리는 걸 들었다고 한다. 그는 ‘동양인들은 윤회 사상에 친숙해서 마지막 장면의 의미를 즉각 알아차리는 것 같다’며 놀라워했다. 무척 인상적인 기억인지 초연 때부터 지금까지 만날 때마다 그 이야기를 하고 또 한다. (웃음)


재공연을 거듭하면서 달라진 부분이 있나?

김재홍: 초연 때는 무대 장치의 물량이 지금보다 서너 배 정도 많아서 셋업에만 7주가 걸렸다. 그때는 무대 양쪽 가림막이 고정된 게 아니라 자동 장치로 회전하면서 열리고 닫혔다. 또 지금처럼 박물관 벽에 눈 모양이 그려져 있지 않고 입체적으로 조각되어 있었다. 암네리스의 옷장도 실제로 부피감 있는 박스 안에 다양한 부조물을 채워 넣은 형태였다. <아이다>에서 비주얼적으로 가장 아름다운 장면은 나일강을 배경으로 여자 노예들이 끌려나오는 장면이라고 생각하는데, 이때 쓰이는 조명 장치도 달라졌다. 지금은 LED 조명을 사용하지만, 초연 때는 무대 양쪽에 스크롤러 라이트가 80대씩 달려 있어서 나무 그림자 세트가 내려오는 속도에 맞춰 위에서 아래로 노란빛이 번져 나갔다. 너무 많은 시간과 비용이 들어가는 탓에 세트와 무대 장치가 간소해졌지만, 개인적으로 초연 무대를 다시 보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다.

모든 시즌을 통틀어 기억에 남는 사건 사고가 있나?

문병권: 무대감독님이 말씀하셨다시피 초연 때는 무대 양옆의 다리막이 회전하는 시스템이었다. 하루는 암네리스 역의 배해선 배우가 커튼콜 인사를 마치고 퇴장하려는데 이 다리막이 너무 일찍 닫혀버린 거다. 뒤이어 등장한 남자 앙상블이 무대를 가로지르며 춤을 추는 동안 암네리스는 애써 태연한 척 벽에 붙어 있어야 했다. (웃음) 지난 1월 1일, 새해 첫 공연에서도 사고가 터졌다. 조세르 역의 박성환 배우가 공연 도중 잠깐 분장실에 내려갔다가 엘리베이터 안에 갇힌 거다. 조세르가 출연해야 하는 연회 장면이 다가오자 무대 뒤에선 난리가 났다. 황급히 조세르 역의 커버를 맡은 앙상블 배우의 옷을 갈아입히고 대사를 숙지시켰는데, 다행히 늦지 않게 무대에 등장하는 데 성공해서 공연 흐름이 끊기지 않았다. 그 사이 박성환 배우도 무사히 엘리베이터를 탈출해서 무대로 복귀했다.


<아이다>는 자신에게 어떤 의미를 지닌 작품으로 기억될 것 같은가? 마지막 공연을 앞두고 감사 인사를 전한다면?

백경진: <아이다> 의상에는 특이한 원단과 장식이 많이 사용되어서 공부해야 할 게 많았다. 염색소를 쫓아다니면서 배운 염색법으로 직접 옷감을 염색하기도 했다. 의상슈퍼바이저로 참여하는 동안 스스로 성장하고 있다는 걸 느낄 수 있었던 고마운 작품이다.

문병권: <아이다>는 내게 안무에 대한 개념 자체를 바꿔준 작품이다. 그저 무대에서 뛰고 돌고 흥겹게 흔드는 게 다가 아니라 움직임 자체로 감정과 드라마를 표현할 수 있다는 걸 이 작품에 참여하면서 깨우쳤다. 협력안무가인 트레이시 코리아에게도 감사 인사를 전하고 싶다. 그가 나를 인정해 주지 않았다면 배우에서 국내 협력안무까지 맡게 되는 기회를 얻을 수 없었을 것이다. 미국 초연 때부터 이 작품에 참여해 왔음에도 항상 나의 의견을 존중해 준 점도 고맙다.

김재홍: <아이다>는 내 인생 뮤지컬이다. 가장 고생한 만큼 애착이 크다. 이 작품은 단순히 화려하고 흥겹기만 한 게 아니라 드라마가 탄탄하고 가슴 뭉클한 힘이 있다. 이렇게 좋은 작품을 과감하게 한국 시장에 소개하고 지금껏 뚝심 있게 끌고 온 박명성 프로듀서에게 감사한다. 제작자로서 배포와 결단이 있었기에 많은 배우와 스태프가 각자의 자리에서 유익한 경험을 쌓을 수 있었고, 이것이 국내 뮤지컬 발전에 이바지했다고 생각한다.

*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197호 2020년 2월호 게재기사입니다.
* 본 기사와 사진은 “더뮤지컬”이 저작권을 소유하고 있으며 무단 도용, 전재 및 복제, 배포를 금지하고 있습니다. 이를 어길 시에는 민, 형사상 법적책임을 질 수 있습니다.

글 | 안세영
사진 | 심주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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