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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ZOOM IN] <스위니 토드> 무대 디자인​, 살인마 이발사가 사는 곳 [No.194]





<스위니 토드> 무대 디자인
살인마 이발사가 사는 곳


은빛 칼날이 지나간 자리에 쏟아지는 붉은 피. 귀청을 찢는 날카로운 금속성 굉음. 복수에 눈먼 살인마 이발사에게 목이 잘린 손님들은 아래층 파이 가게에서 노릇노릇한 고기 파이가 되어 팔려 나간다. <스위니 토드>는 뮤지컬계의 신화적인 작곡가 스티븐 손드하임의 대표작이지만, 대중성과는 거리가 먼 괴기스런 이야기와 낯선 음악 탓에 국내에서는 자주 공연되지 않은 작품이기도 하다. 2007년 아드리안 오스먼드의 연출로 국내 초연을 올린 이후 9년이 지난 2016년에야 에릭 셰퍼가 연출한 재연이 무대에 올랐다. 그리고 다시 3년이 지난 올해 <스위니 토드>가 에릭 셰퍼 연출가와 함께 돌아왔다. 이번 시즌 공연에서 가장 눈에 띄는 변화는 바로 무대다. 상류층과 하류층의 격차를 상징하는 3층 구조는 그대로지만, 지난 시즌 미니멀한 무대와 달리 사실적인 세트가 펼쳐진다. 폐공장을 모델로 한 어두운 철골 구조물은 폐쇄적인 분위기를 자아내 여기서 벗어날 수 없으리란 공포감을 자극한다. 새롭게 무대를 디자인한 건 에릭 셰퍼의 오랜 작업 파트너로 2017년 <타이타닉>에서 선실 통로를 형상화한 독특한 무대를 선보인 바 있는 폴 드푸. 그에게 이번 시즌 무대 디자인에 숨은 의미를 들어보고, 국내외 다른 프로덕션의 <스위니 토드> 무대도 함께 살펴보았다.



2019 프로덕션: 폴 드푸 무대디자이너

Q 공연이 시작되기 전에 걸려 있는 쇼 커튼은 어떤 역할을 하나?

A 연출가 에릭 셰퍼와 나는 커튼이 스위니의 살인 현장을 은폐하기 위해 사용된 불에 탄 건축용 비닐처럼 보이길 원했다. 이 커튼이 걷히면 현실에서 볼 수 있을 법한 공간이 드러난다. 연극적인 세트가 아닌 사람들이 거주하는 사실적인 공간을 만들어냄으로써 이야기에 강력한 힘을 불어넣는 게 목표였다.

Q 폐공장 컨셉에 대한 영감은 어디서 얻었나?

A 과거 내가 살던 곳 근처에 오래된 공장이 있었다. 그 공장은 뉴욕시 한복판에 자리 잡고 있었지만 항상 버려진 곳처럼 보였다. 수년간 길 건너편에서 공장을 지켜보다가 하루는 그곳 직원에게 공장의 정체를 물었다. 그러자 늦은 저녁 시간에만 돌아가는 크로와상 공장이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그때부터 줄곧 그곳이 <스위니 토드>의 완벽한 배경이 될 거라 생각해 왔다. 무대는 오래된 공장에서 발견할 수 있는 모든 것으로부터 영감을 얻었다. 녹슨 강철, 누수 파이프, 위협적인 환기 팬, 변색된 목재, 부식된 벽돌 등이 무대 곳곳에 자리잡고 있다. 나는 관객들이 공연을 볼 때 폐공장에 살고 있는 사람들이 스위니 토드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처럼 느끼게 만들고 싶었다. ‘들어는 봤나 스위니 토드(Attend the tale of Sweeney Todd)’라는 가사처럼 말이다. 실제로 런던의 폐공장에서 노숙인들이 새로운 커뮤니티를 만들어 생활하기도 한다는 사실을 알고 이러한 컨셉을 작품에 접목시켰다.

Q 작품의 배경인 19세기 빅토리아 시대 런던의 특성이 반영된 디자인이 있나?

A 우리 크리에이티브 팀은 특정 시대를 재현하는 것보다는 이야기를 전달하는 공간을 만들어내는 데 더 관심이 있었다. <스위니 토드>는 이발사가 존재하는 한 어느 시대, 어느 사회에서나 일어날 수 있는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텅스텐 할로겐 램프와 가구만이 빅토리아 시대의 특징을 담은 유일한 요소다.

Q 이발소 의자가 등장할 때 공중에서 내려오도록 한 이유는 무엇인가? 이발소 의자가 놓여 있는 세트가 어떻게 작동하는지도 궁금하다.

A 우선 이발소 의자가 공중에서 내려오도록 한 이유는 극본에 그렇게 쓰여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 장면이 마치 공장의 채광창을 통해 그랜드 피아노를 배달받는 것처럼 느껴지길 원했다. 파이 가게 손님들은 눈치채지 못하게 스위니가 이발소 의자를 배달받을 수 있는 방법이다. 이발소 의자는 극적인 공학 기술로 빚어낸 환상적인 제품이다. 스위니가 손님을 죽인 뒤 의자 손잡이에 연결된 레버를 당기면 바닥에 숨겨진 슬라이드를 통해 아래층 파이 가게로 시체가 미끄러져 내려간다. 또한 이발소 세트를 수동이 아닌 자동으로 전환해 음악이 이야기를 끌고 나가는 속도에 맞춰 매끄럽게 장면 전환이 이어지도록 했다.

Q 무대디자이너로서 당신의 디자인 철학은 무엇인가?

A 나는 어떤 무대를 디자인하든 ‘이 이야기를 전달하기 위해 꼭 필요한 것은 무엇인가, 이 이야기를 전달하고 있는 이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으로부터 시작하도록 훈련받았다. 그리고 관객을 위해 역동적인 공간을 만들려고 한다. 나는 무대 장치로 ‘미지의 것을 채워 넣은’ 공간을 추구하지 않는다. 관객이 상상력으로 ‘여백을 채워 넣게’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이것이 성공한다면 극장은 관객 각자에게 독특한 경험과 시각을 선사할 것이다.



2016 프로덕션: 오필영 무대디자이너

2016년 국내 공연에서 오필영 무대디자이너는 모던하고 미니멀한 무대를 선보였다. 새하얀 3층 골조에는 이발소 의자, 풍금 등 꼭 필요한 대도구만 존재했다. 또한 세트 전환 없이 강렬한 조명으로 공간과 심리 변화를 표현했다. <스위니 토드>의 배경이 되는 19세기 빅토리아 시대 런던은 산업 혁명과 도시화로 인해 인간 소외, 빈부 격차와 같은 문제에 시달리고 있었다. 이러한 배경이 강조될 때 스위니 토드의 비극은 개인의 문제가 아닌 사회 구조적 모순의 결과로 비치게 된다. 하지만 2016년의 단출한 무대에서는 이러한 시대성과 상징성이 탈색되었다. 대신 빈 무대가 캐릭터를 돋보이게 만들고, 기괴한 분위기를 누그러뜨려 관객에게 한층 친근하게 다가갔다.



2007 프로덕션: 정승호 무대디자이너

2007년 국내 초연에서 정승호 무대디자이너는 차가운 메탈 소재와 딱딱한 직선 형태의 파이프를 활용해 잔혹한 복수극을 표현했다. 천장까지 치솟은 3층 골조 세트와 프로시니엄 아치를 감싼 기계 장치는 그 안에서 움직이는 배우들을 미미한 존재로 보이게 만들었다. 배우들은 직접 세트를 움직이고 나사를 조이기도 했는데, 그 모습이 마치 거대한 기계 장치를 움직이는 작은 톱니바퀴를 연상시켜 그들의 운명이 자신의 손에 놓여 있지 않다는 느낌을 줬다. 공연의 피날레, 토비아스가 고기 가는 기계를 돌리면 무시무시한 굉음과 함께 프로시니엄 아치를 감싼 톱니바퀴가 돌아가면서 ‘The Ballad of Sweeney Todd’의 합창이 시작된다. 이로써 스위니 토드를 비롯한 무대 위 등장인물 모두가 그들을 둘러싼 거대하고 잔인한 사회 구조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는 점을 강조했다.

독창적인 해외 프러덕션



1979년 브로드웨이 초연

<스위니 토드>의 브로드웨이 초연은 해롤드 프린스가 연출하고, 유진 리가 무대를 디자인했다. 해롤드 프린스는 스위니 토드를 산업화 시대가 낳은 괴물로 부각시키기를 원했고, 유진 리는 그에 맞게 어둡고 거대한 철골 구조 무대를 만들었다. 당시 기준으로 단일 무대로는 브로드웨이 사상 최대 규모였으며, 360도 회전이 가능한 세트로 암전 없이 속도감 있게 이야기를 진행시켰다. 이러한 무대는 스위니 토드가 살았던 역동적이고 비인간적인 산업 혁명기 대도시 런던을 훌륭하게 시각화해 후대 여러 프로덕션의 교본이 되었다.



2005년 브로드웨이 공연

연출가 존 도일은 <스위니 토드>를 10명의 배우가 연기와 연주를 겸하는 액터 뮤지션 뮤지컬로 리바이벌했다. 작품의 배경 또한 정신병원으로 바뀌었다. 정신병원 환자인 토비아스가 의사, 간호사와 함께 자신이 겪은 끔찍한 사건을 사이코드라마로 재현한다는 컨셉이다. 구체적인 세트 없이 배우들이 관 모양 궤짝과 의자, 사다리를 움직여서 다양한 장면을 만들어냈다. 2004년 영국 워터밀 극장에서 시작된 액터 뮤지션 공연은 신선한 형식으로 화제를 모으며 웨스트엔드와 브로드웨이에 진출했다.


2014년 런던 공연

영국 극단 투팅 아츠 클럽은 2014년 <스위니 토드>를 이머시브 시어터 형식으로 선보였다. 투팅에 자리한 런던에서 제일 오래된 파이 가게 ‘해링턴(Harrington's Pie & Mash shop)’에서 회당 32명만 입장 가능한 공연을 올린 것이다. 공연에 앞서 길 건너 이발소에서 파이를 맛보는 특별한 즐거움도 누릴 수 있었다. 파이 가게가 공사에 들어가면서 공연도 막을 내리게 되었지만, 이 공연을 흥미롭게 관람한 손드하임으로부터 소식을 전해 들은 프로듀서 캐머런 매킨토시가 공연이 계속될 수 있도록 웨스트엔드에 임시 극장을 마련해 주었다. 극단은 기존의 나이트클럽을 파이 가게처럼 개조한 지하 공간에서 두 달 더 연장 공연을 펼칠 수 있었다.

2015년 노르웨이 공연

2015년 노르웨이 오슬로에서 공연된 <스위니 토드>는 여타 프로덕션과 확연히 구분되는 컬러풀하고 키치한 세계를 창조했다. 무대 위에 <스위니 토드>라는 제목이 빨간 마퀴라이트로 걸려 있고, 알록달록하고 과장된 옷을 입은 인물들이 등장하여 마치 서커스단이 스위니 토드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듯한 느낌을 줬다. 인육 파이는 배우가 직접 파이 모양 가면을 얼굴에 쓰는 코믹한 형태로 만들고 조안나는 라푼젤처럼 긴 머리를 늘어트리고 커다란 새장에 갇혀 있게 하는 등 개성 넘치는 시각적 요소가 눈길을 사로잡았다.

2017년 미국 공연

2017년 미국 일리노이주 오로라에 위치한 1885석 규모의 대극장 파라마운트 극장에 올라간 <스위니 토드>는 웅장한 무대 세트로 주목받았다. 3층짜리 철골 구조물은 브로드웨이 초연의 전통을 이어받고 있지만 무대 중앙에 위층과 아래층을 잇는 리프트가 자리한 점이 특이했다. 스위니 토드가 위층에서 사람을 죽이면 그 시체는 이발소 의자에 앉은 채로 천천히 리프트를 타고 내려와 파이를 굽는 화로의 시뻘건 불빛과 연기에 휩싸였다.

*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194호 2019년 11월호 게재기사입니다.
* 본 기사와 사진은 “더뮤지컬”이 저작권을 소유하고 있으며 무단 도용, 전재 및 복제, 배포를 금지하고 있습니다. 이를 어길 시에는 민, 형사상 법적책임을 질 수 있습니다.

글 | 안세영
사진제공 | 오디컴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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