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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ULTURE REVIEWERS TALK] <오펀스>​, 젠더프리가 만든 익숙하고도 낯선 풍경 [No.194]





<오펀스>

젠더프리가 만든 익숙하고도 낯선 풍경

중년의 갱스터와 고아 형제가 만나 가족이 되는 이야기를 그린 연극 <오펀스>가 젠더프리 캐스팅으로 돌아왔다. 2017년 국내 초연은 대본에 쓰인 대로 세 역할 모두 남성이 연기했지만, 올해는 남성 팀과 여성 팀이 번갈아 무대에 오른다. 여성 배우가 연기하는 <오펀스>는 어떤 모습일까? <더뮤지컬> 리뷰어 3명이 남성 팀과 여성 팀의 공연을 모두 관람한 뒤 이야기를 나눴다.

*_자유로운 대화를 위해 참여자 이름은 뮤지컬 캐릭터명으로 기재했으며, 리뷰 내용은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힐링 혹은 판타지

스위니_ 남성 배우 버전으로 처음 공연을 봤을 때 어땠어? 나는 갱스터 해롤드가 다른 꿍꿍이가 있어서 애들한테 접근한 줄 알았어. 느닷없이 나타나서 모르는 애들한테 돈 주고 밥 주고 격려도 해준다는 게 말이 안 되잖아. 언제 비밀이 밝혀질까 기다렸는데 끝까지 아무런 반전도 없더라.

마틸다_ 처음 보면 헷갈릴 수밖에 없는 게 공연이 자꾸 의심스러운 단서를 흘려. 해롤드가 시카고에 남겨두고 온 미망인과 형제들의 엄마가 무슨 관련이라도 있는 듯, 소품 하나하나가 중요한 복선이 될 것처럼 행동하잖아. 게다가 포스터랑 홍보물에서부터 작품에 등장하는 각종 소품의 이미지를 강조해 보여주니까 그것들이 미스터리를 풀기 위한 열쇠처럼 여겨져.

클레어_ 심지어 장면 전환을 위해 암전을 할 때마다 집 안 구석구석에 숨겨진 소품을 의미심장하게 조명하는데, 실제로 감춰진 의미가 있는 것도 아니야.

마틸다_ 미스터리한 단서들로 관객을 유추하게 만들어 놓고 결과적으로 전하고픈 메시지는 ‘격려’라니까 맥이 빠지더라고.

스위니_ 비현실적인 설정 때문에 그 격려도 별로 와닿지 않았어. 갱스터였던 사람이 개과천선해서 고아들에게 좋은 아버지가 되어주기로 마음먹는다고 해서 그렇게 한순간에 바뀔 수 있을까. 근데 해롤드는 등장할 때부터 이미 완벽해. 지성과 인성을 갖춘 데다 돈까지 있잖아! 게다가 애들한테 뭐가 필요한지 한눈에 알아차리고.

클레어_ 그러니까 힐링극이지. 현실에는 존재하지 않는 멋진 어른을 보여주잖아. 불안한 젊은 세대에게는 믿을 만한 기성세대가 자신을 격려하고 이끌어줬으면 하는 소망이 있는데, 현실에서는 만나기 어려우니까 대리만족을 느끼는 거지.

스위니_ 하지만 그러다 보니 외로웠던 세 사람이 서로의 가족이 되어주는 이야기라기보다 해롤드가 일방적으로 다른 둘을 교화하는 이야기처럼 보이던데.

마틸다_ 외로운 남자들이 모여 유사 가족을 형성한다는 이야기 자체가 너무 식상해. 1980년대 미국을 배경으로 한 유사 가족 만들기가 지금의 나한테 무의미하게 느껴지더라고.

스위니_ 마지막에 필립이 해롤드가 준 로퍼를 벗고, 트릿이 필립의 운동화 끈을 묶어주는 장면은 뭘 의미한다고 생각해?

클레어_ 이제는 형제가 자신들을 이끌어준 해롤드를 떠나보내고 둘만의 힘으로 살아보겠다는 의지를 표명하는 장면이라고 생각했어. 트릿이 운동화 끈을 묶어주는 건, 자기도 사랑받고 보호받아 본 적이 없어서 동생에게 어떤 보호자가 되어야 할지 몰랐던 트릿이 일련의 과정을 거쳐 더 나은 보호자가 되었다는 걸 의미하는 듯 싶어.

스위니_ 끈 풀린 운동화는 자유롭게 돌아다닐 수 없는 필립의 처지를 상징적으로 보여줬어. 트릿이 그런 필립의 운동화 끈을 묶어주고 문도 열어준다는 건, 이제 너를 가둬두지 않고 세상 밖으로 나갈 수 있도록 도와주는 존재가 되겠다는 암시라고 생각했어. 동시에 필립도 형을 위해 한 가지를 양보한 거지. 로퍼를 신고 혼자 뛰어나갈 수도 있지만, 보호자로서 자신의 역할이 사라지는 걸 불안해하는 형을 위해 연결고리를 남겨 놓잖아.

마틸다_ 트릿이 필립을 일방적으로 보호해 주던 관계가 결말에서는 필립도 트릿을 보듬어 줄 수 있는 관계로 변했어. 앞으로는 둘이 서로의 부족한 점을 채워주며 나아갈 거라는 희망적인 엔딩으로 받아들였어.



무대 위의 거친 여자들

스위니_ 여성 배우 버전을 봤을 때 이전과 다르게 느껴지는 점이 있었어?

클레어_ 남성 배우들 공연이 어머니를 그리워하는 형제 앞에 아버지 같은 존재가 나타나는 이야기였다면, 여성 배우들 공연은 정말 어머니를 대신할 수 있는 존재가 나타난 것처럼 보였어. 남자들끼리 가족을 이뤘을 때는 그들이 여전히 엄마와 미망인이라는 여성의 존재를 갈망한다는 점이 선명하게 다가와서 현재의 그들만으로는 불완전해 보였거든. 반면 여성 배우들은 좀 더 서로의 결핍을 채워줄 수 있는 완전한 가족처럼 느껴졌어.

마틸다_ 나는 기존의 남성 역할을 여성 배우가 연기하면서 그동안 못했던 연기를 보는 게 재미있었어. 무대에서 남성 배우가 소리 지르고 뛰어다니고 때려 부수는 건 많이 봤지만 여성 배우가 그러는 건 처음 봤거든. 목소리, 대사, 옷차림, 몸의 움직임까지 모든 면에서 새로웠어. 그리고 개인적으로 폭력적인 남자에 대한 트라우마가 있는데, 여성 배우가 연기하니까 폭력적인 장면에서도 트리거가 눌리지 않더라. 아마 많은 여성 관객이 공감할 거야.

스위니_ 나도 남성 배우로 봤을 때 트릿이 동생 필립을 대하는 방식이 너무 폭력적이라서 거부감이 느껴졌어. 물건을 집어던지면서 ‘내가 널 먹여 살리려고 얼마나 고생했는데, 넌 나 없으면 죽어’라는 식으로 얘기하는 게 아내에게 폭력을 휘두르는 남편이 하는 가스라이팅과 유사하잖아. 그러니까 트릿이 아픔이 있어서 저렇게 행동한다는 걸 머리로는 이해하지만 마음이 열리지 않더라고.

마틸다_ 극 후반부에 해롤드가 트릿을 ‘딸’이라고 부르면서 여성 배우들이 남자를 연기하고 있던 게 아니라 세 인물 모두 여자라는 게 밝혀져. 그러니까 살아남기 위해 남자처럼 꾸미고 센 척하며 살아온 해롤드와 트릿의 삶이 겹쳐지면서, 해롤드가 트릿을 보자마자 그의 처지에 공감하고 도와준다는 이야기에 설득력이 생겼어. 어깨를 주물러주는 행동의 의미도 다시 생각해 보게 됐어. 해롤드는 한 번도 다정한 손길을 경험한 적이 없는 트릿에게 누군가와 닿는 것만으로도 느껴지는 위안을 경험하게 해주고 싶은 거야. 트릿은 그 손길을 받아들이면 자기가 약해질 것 같으니까 계속 거부하는 거고.

스위니_ 아까 해롤드가 너무 환상적인 존재라는 얘기를 했잖아. 근데 여성 배우가 연기하는 해롤드는 고아일 뿐 아니라 여성으로서 갱스터가 되기까지 얼마나 고된 삶을 살았을지 현실적인 상상을 하게 만들어. 또 해롤드가 레즈비언이라면 사회에서 이상적으로 받아들여지는 남자와 여자, 그리고 그들 사이에서 태어난 자식들로 이루어진 가정을 꾸리기 힘들잖아. 그런 해롤드가 혈연과 혼인이 아닌 여성 간의 연대로 뭉친 대안 가족을 만들어낸다는 점에서 이 작품이 동시대 여성과 퀴어를 격려할 수 있는 여지가 생긴 느낌이야.

클레어_ 그런데 실제로 이 작품을 여성 배우가 연기하면서 바뀐 부분은 ‘딸’이라는 단어 하나뿐이고, 나머지 변화는 우리가 그 단어를 듣고 상상한 거잖아. 과연 연출가가 정말 그런 의도로 작품을 만들었는지, 우리가 지나치게 의미 부여를 하고 있는 건 아닌지 의문이야. 요새 젠더프리 공연을 보면서 자주 하는 생각이, 젠더프리가 여성 배우에게 새로운 기회를 열어준다는 것 외에 극 안에서 어떤 새로운 의미를 만들어내는지 모르겠다는 거야.

마틸다_ 지금까지 올라온 젠더프리 공연 대부분이 애초에 남성 배우를 위해 쓰인 역할을 여성 배우가 연기한 거잖아. 원작자가 젠더프리를 의도하지 않고 쓴 극본을 연출만으로 의미를 만들어내는 데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어. 사실 젠더프리가 이슈화되기 전에도 연극 무대에서는 배우가 성별에 상관없이 배역을 맡는 사례가 많았어. 그러니 젠더프리 공연 자체를 새롭고 혁명적인 시도로 보기는 어렵지.

스위니_ 젠더프리 공연보다는 여성 작가가 여성 배우를 위해 쓴 여성 캐릭터가 나오는 공연을 더 많이 보고 싶어. 물론 그러기까진 시간이 걸릴 테니까 당장 여성 배우가 설 자리를 늘리기 위해서는 젠더프리 공연이 필요하겠지만.

마틸다_ 드라마 <닥터 후> 시리즈에서 첫 여성 닥터를 연기한 배우가 인터뷰에서 이런 말을 했어. 자기는 여태까지 남자가 대사를 시작하면 거기에 맞춰 리액션을 하는 역할만 해왔는데, 닥터 역을 맡으니까 먼저 나서서 다른 배우를 리드하는 상황에 적응해야 했다고. 마찬가지로 젠더프리 공연을 통해 여성 배우가 거칠고 주도적인 역할을 맡는 게 우리 사회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생각해. 여성 배우도 이런 연기가 가능하다는 걸 직접 목격하면서 느끼는 놀라움이 분명 있거든. 그러면서 현실의 성별 고정 관념에 대해서도 돌아보게 돼.

클레어_ 젠더프리 공연은 극 내용이 아쉬워도 극 밖에서 항상 의미를 가지니까 계속 응원하고 싶어.


*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194호 2019년 11월호 게재기사입니다.
* 본 기사와 사진은 “더뮤지컬”이 저작권을 소유하고 있으며 무단 도용, 전재 및 복제, 배포를 금지하고 있습니다. 이를 어길 시에는 민, 형사상 법적책임을 질 수 있습니다.

글 | 안세영
사진제공 | 레드앤블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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