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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CUS] 장벽 없는 극장 만들기, 남산예술센터 배리어프리 공연 [No.194]





장벽 없는 극장 만들기
남산예술센터 배리어프리 공연
“객석 오픈했습니다. 티켓을 소지한 관객분들은 바로 입장 가능합니다.” 객석 오픈을 알리는 극장 안내원의 손에는 그가 말하는 내용과 같은 문구가 적힌 푯말이 들려 있다. 매표소 창구 앞에는 ‘배리어프리 서비스 이용 신청서’라고 쓰인 종이가 가지런히 쌓여 있다. 이용 희망 서비스로 음성 해설과 문자 통역을 모두 체크한 뒤, 작성한 신청서를 신분증과 함께 로비의 물품 보관소에 제출하니 안내원이 FM수신기를 건네준다. 객석에 들어서자 가장 뒷줄에 스마트폰 단말기가 달린 12개의 좌석이 보인다. 그중 한 곳에 앉아 좌석 손잡이에 부착된 단말기 거치대의 각도를 보기 편하게 조절한다. 단말기 화면에는 앞으로 자막이 어떤 식으로 대사와 소리 정보, 음악 정보를 구분해 표기할 것인지 알려주는 문구가 떠 있다. FM수신기의 이어폰을 한쪽 귀에 꽂자 공연이 시작되기 앞서 무대가 어떤 모습인지 설명하는 목소리가 흘러나온다. 지난 10월 19일, 연극 <그믐, 또는 당신이 세계를 기억하는 방식(이하 그믐)>의 배리어프리 공연이 진행된 남산예술센터의 풍경이다.


음성 해설과 자막으로 즐기는 공연
배리어프리(Barrier-free) 공연이란 ‘장벽이 없다’는 뜻처럼 장애에 상관없이 누구나 즐길 수 있도록 제작된 공연을 말한다. 남산예술센터가 배리어프리 공연을 처음 선보인 건 지난 4월 연극 <7번국도>에서다. <7번국도>를 공동 제작한 극단 ‘여기는 당연히, 극장’이 먼저 배리어프리 공연을 제안했다. 남산예술센터 관계자는 “이전까지 배리어프리 공연을 올린 경험이 없었다. 노후한 극장 시설로 인해 난관이 예상되었지만, 장애 유무에 관계없이 공연을 즐길 수 있는 극장이 되길 바랐다”고 배리어프리 공연을 시작한 이유를 설명했다. 남산예술센터는 <7번국도>를 시작으로 <명왕성에서>, <묵적지수>, <그믐>까지 작품마다 2회 이상의 배리어프리 공연을 선보였다.
남산예술센터의 배리어프리 공연은 기본적으로 시각장애인을 위한 음성 해설과 청각장애인을 위한 문자 통역 서비스를 제공한다. 음성 해설은 대사 사이사이에 등장인물의 행동, 세트와 조명의 변화, 듣기만 해서는 알 수 없는 소리에 대한 정보를 음성으로 설명하는 서비스다. 예를 들어 두 개의 달 모양 무대를 사용하는 <그믐>에서는 ‘소녀가 돌아서서 큰 달로 성큼성큼 올라간다. 작은 달의 조명이 꺼지고 큰 달이 어슴푸레하게 빛난다.’ 같은 음성 해설이 제공된다. 해당 서비스를 신청한 관객에게는 FM수신기를 빌려주는데 원한다면 비장애인도 기기를 빌려 체험할 수 있다. 문자 통역은 배우의 대사, 배경 음악과 소리에 대한 정보를 자막으로 전달하는 서비스다. 대사만 나오는 외화 자막과 달리 화자가 함께 표기되고 ‘아련하고 애틋한 느낌의 음악’, ‘자동차 와이퍼 소리’ 등 소리 전반에 대한 설명이 곁들여진다. <7번국도>와 <묵적지수>는 무대 한쪽에 두 명의 수어 통역사가 서서 역할을 나눠 수어 통역도 함께 제공했다.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시·청각장애인은 원하는 좌석 어디든 앉을 수 있다. 다만 관람의 편의를 위해 시각장애인에게는 배우의 호흡과 소리 방향이 잘 들리는 무대 앞자리를, 청각장애인에게는 자막과 수어 통역과 무대가 한눈에 잘 보이는 자리를 우선 제공한다. 이 우선 제공 좌석은 연출부, 음성 해설 및 문자 통역 대본 작가, 시·청각장애인으로 구성된 모니터링 요원의 의견을 모아 정한다. 참고로 휠체어석은 모든 공연 회차에서 이용 가능하다.
가장 최근에 공연한 <그믐>은 앞선 세 작품과 달리 재공연 작품이었기 때문에 배리어프리 공연을 진행하는 데 제약이 따랐다. 초연작은 세트 제작 단계에서부터 자막 스크린과 수어 통역사의 위치를 고려하지만, 재연작인 <그믐>은 이미 세트가 완성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경사진 무대는 객석에서 잘 보이는 위치에 자막 스크린을 띄우기 어려웠고, 수어 통역사가 함께 무대에 서기에도 안전하지 않았다. 그래서 수어 통역과 개방형 문자 통역(무대 위에 스크린을 띄워 모든 관객에게 자막 해설을 제공하는 방식) 대신 폐쇄형 문자 통역(지정 좌석에 마련된 개별 기기를 통해 자막 해설을 보는 방식)을 제공했다. 문자 통역 단말기의 불빛이 다른 관객에게 피해를 주지 않도록 지정 좌석은 객석 맨 뒷줄에 마련되었다.


누구에게나 열린 극장이 되려면
배리어프리 공연이 있는 날은 극장 안내 서비스도 평소보다 세심하게 준비한다. 시각장애인에게는 사전 신청자에 한해 명동역 1번 출구에서 극장 입구까지 동행하는 보행 안내 서비스를 제공한다. 극장에 도착해 티켓을 찾고 자리에 착석할 때에도 일대일 안내를 받을 수 있다. 또한 FM수신기를 통해 공연 시작 전 30분 동안, 약 5분 간격으로 공연 정보와 관람 유의 사항을 전달한다. 매표소에는 청각장애인 관객을 위한 수어 통역사가 상주한다. 다른 안내원들도 필담에 필요한 수첩과 볼펜을 소지하고 있으며, 매표소 위치와 공연 시작 시각 등을 적은 푯말을 들고 안내를 진행한다.
남산예술센터는 한국장애인문화예술원 이음센터를 비롯한 장애 관련 단체와 협력해 배리어프리 공연을 홍보하고 있다. 홍보 수단 역시 장애인의 접근성을 고려했다. 많은 저시력 시각장애인이 웹서핑을 위해 문자 정보를 음성으로 읽어주는 ‘스크린 리더기’라는 프로그램을 이용하는데, 대부분의 티켓 예매 사이트에 게재된 공연 정보는 문자가 아닌 이미지 파일 형태로 올라와 있기 때문에 스크린 리더기를 사용할 수 없다. 남산예술센터는 이 점을 고려해 홈페이지 공연 소개 항목에 문자로 된 공연 소개서를 함께 올려서 시각장애인이 스크린 리더기를 이용해 공연 정보를 얻을 수 있도록 했다. <7번국도>, <묵적지수>는 시각장애인을 위한 점자·묵자 혼용 리플릿을 제작하기도 했다. 청각장애인을 위해서는 문자 예매가 가능하도록 했으며, 극장 이용 안내 영상도 배리어프리 버전으로 제작했다.
공연 산업이 발달한 영미권 극장들은 장애인의 공연 관람 접근성을 높이기 위해 다양한 서비스를 제공한다. 영국의 국공립극장은 일반적으로 공연 기간 중 2회가량 음성 해설과 자막 해설 공연을 진행한다. 영국 내셔널 시어터는 무대와 자막 스크린을 번갈아 볼 필요 없이 관객의 눈앞에 자막을 띄워주는 스마트 안경을 개발해 사용 중이다. 시각장애인을 위해서는 공연 전에 무대 세트와 소품, 의상 등을 만져보며 설명을 들을 수 있는 ‘터치 투어(Touch Tour)’ 서비스도 제공하고 있다. 이에 반해 국내에서는 배리어프리 공연 자체를 찾아보기 힘들다. 남산예술센터의 지금과 같은 행보가 반가운 이유다.
남산예술센터의 첫 배리어프리 공연이었던 <7번국도>는 시각장애인 21명, 청각장애인 42명이 관람하였다. 이후 공연된 <명왕성에서>, <묵적지수>의 배리어프리 공연은 회차별로 평균 10여 명의 장애인이 관람하였다. 남산예술센터 측은 앞으로도 극단과 협력해 배리어프리 공연을 이어갈 뜻을 밝혔다. “배리어프리 공연을 하는 데는 공동 제작 극단의 의지도 중요하다. 함께하는 사람들이 배리어프리의 중요성에 공감하고, 예산을 비롯한 여건이 허락하는 한 배리어프리 공연을 계속하고자 한다.” 남산예술센터의 의미 있는 시도가 국내에 배리어프리 공연이 확산되는 데 선구자적 역할을 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

INTERVIEW
사운드플렉스스튜디오강내영 대표
국내에 배리어프리 공연이 활성화되어 있지 않은 만큼 전문적인 제작 노하우를 갖춘 인력층도 두텁지 않다. 현재 남산예술센터 배리어프리 공연의 음성 해설과 문자 통역 대본은 배리어프리 콘텐츠 제작 업체 ‘사운드플렉스스튜디오’의 강내영 대표가 책임지고 있다. 자신도 저시력 시각장애인인 강내영 대표는 그동안 주로 영화, 드라마, 방송 등 영상 콘텐츠의 배리어프리 버전 제작에 참여해 왔다. 배리어프리 공연은 배리어프리 영상과 어떤 차이가 있으며 어떤 특성을 고려해야 하는지 구체적인 제작 과정을 들어보았다.
배리어프리 공연을 위한 작업이 시작되는 시점은 언제인가?
영화는 작품이 완성된 이후 배리어프리 버전 제작에 들어간다. 이와 달리 남산예술센터의 공연은 작품 제작 단계부터 배리어프리 버전을 염두에 두고 만들어졌다. 배리어프리 공연을 위한 음성 해설과 문자 통역 대본은 최종 리허설을 토대로 작성한다. 극본이 먼저 나와 있어도 연습 과정에서 계속 수정되기 때문이다. 또 배우의 행동뿐 아니라 세트와 조명의 변화까지 설명해야 하기 때문에 완벽하게 셋업된 무대에서 진행된 최종 리허설을 영상으로 촬영해 그걸 보며 대본을 쓴다. <7번국도> 때는 멋모르고 첫 공연을 배리어프리 버전으로 계획했는데, 그러다 보니 대본 집필에 주어진 시간이 너무 짧았다. 음성 해설 내레이터와 자막 오퍼레이터가 연습할 시간도 부족했다. 그래서 다음 작품부터는 배리어프리 공연 회차를 개막 중후반으로 늦추고 완성도를 높이는 데 힘썼다.
같은 작품이라도 공연을 할 때마다 조금씩 차이가 생기기 마련이다. 여기에 맞춰 음성 해설을 하는 게 쉽지 않을 것 같다.
그래서 녹음이 아닌 실시간 음성 해설을 진행하고 있다. 지난해 공연한 배리어프리 뮤지컬 <비상> 시즌2의 경우, 내레이터가 객석 뒤에 설치된 방음 부스 안에서 음성 해설을 진행했다. 이렇게 하면 내레이터가 직접 무대를 볼 수 있기 때문에 배우들의 호흡을 따라가기가 한결 수월하다. 하지만 남산예술센터는 배우들이 조용한 환경에서 마이크 없이 연기하기 때문에 방음 부스에서 새어나오는 소리가 공연을 방해할 우려가 있었다. 그래서 아쉽지만 내레이터가 분장실에서 모니터로 공연 상황을 지켜보며 해설하는 방식을 택했다.
음성 해설 내레이터로는 누가 참여하나?
내레이터는 기본적으로 연극에 대한 이해도가 높고, 돌발 상황에도 순발력 있게 대처할 수 있어야 한다. 그래서 성우보다 연극배우를 선호한다. 무엇보다 내레이터 혼자 2시간 이상 음성 해설을 이어가야 하는데, 그렇게 할 수 있는 건 실제로 무대 위에서 긴 호흡으로 연기해 본 경험이 있는 연극배우뿐이다. 현재 남산예술센터 배리어프리 공연의 음성 해설 내레이터는 이전부터 나와 함께 작업해 온 조연희 배우가 맡고 있다. 다른 배우들도 관심이 있다면 문을 두드려주길 바란다.
음성 해설 대본을 쓸 때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무엇인가?
흔히들 시각적인 정보를 설명하는 게 가장 중요하리라 생각하지만, 듣기만 해서는 뭔지 알 수 없는 소리에 대한 궁금증을 해결해 주는 게 최우선이다. 또 시각장애인은 목소리로 등장인물을 기억하기 때문에 극 초반에 목소리와 이름이 연결되게끔 해설해 주는 게 중요하다.
공연 전 안내 멘트는 왜 필요한가?
대사 사이사이에 음성 해설이 들어갈 수 있는 시간적 여유가 그리 길지 않다. 짧으면 5초에서 길면 15초 안에 무대 위에서 벌어지는 상황을 알기 쉽게 설명해야 한다. 그래서 공연 전에 무대, 소품, 조명, 의상 등이 어떤 식으로 활용되는지 미리 알려주고 공연 중에는 되도록 간단하게 언급한다. 예를 들어 <그믐>은 두 개의 달이 붙어 있는 모양의 무대를 사용하는데, 공연 전 안내 멘트를 통해 이러한 무대 형태를 설명하면서 앞으로 이 무대를 큰 달과 작은 달로 구분해 부르겠다고 안내했다.


<그믐>은 시간의 흐름대로 이야기가 진행되지 않는 데다 신체 행동을 중시하는 연극이다. 이러한 특징 때문에 음성 해설이 어렵지는 않았나?
간혹 작품이 난해하니 시·청각장애인이 이해하기 쉽도록 사전 정보를 더 줘야 하는 게 아닌가 고민하는 창작자분들이 계신다. 하지만 비장애인이 어렵게 느끼는 작품은 장애인도 어렵게 느끼는 게 자연스러운 일 아닐까. 나는 장애인이 비장애인과 최대한 동일한 선에서 작품을 관람할 수 있도록 지나친 부연 설명을 자제하는 편이다. <그믐>의 경우, 배우들이 계속해서 돌아다니거나 제자리를 맴도는 연기 방식에 대해 공연 전 안내 멘트로 설명하였고, 공연 중에는 시간이 허락할 때만 이 점을 다시 상기시켰다. 일일이 언급하지 않아도 객석 가까이 앉은 시각장애인 관객은 배우가 돌아다니는 소리를 들을 수 있다. 과거 장면 또한 배우의 목소리와 대화 내용을 통해 학창 시절 얘기를 한다는 걸 유추할 수 있기 때문에 굳이 과거란 설명을 덧붙이지 않았다.
개방형 문자 통역과 폐쇄형 문자 통역을 진행할 때 각각 고려해야 할 사항은 무엇인가?
개방형 문자 통역은 자막 스크린을 객석에서 잘 보이는 곳에 위치시키는 게 중요하다. 수어 통역을 병행할 경우, 통역사의 위치에 대한 고민도 필요하다. <7번국도> 때는 무대 중앙에 자막 스크린을, 무대 양옆에 수어통역사를 배치했는데 배우의 연기와 통역사를 번갈아 보기가 불편하다는 지적이 나왔다. <명왕성에서>는 배우들 뒤쪽으로 자막 스크린과 수어통역사를 배치했다. 그런데 이번에는 수어통역사에게 배우들이 객석을 향해 내는 목소리가 잘 들리지 않는 문제가 생기더라. 모두를 만족시킬 수 있는 정답은 존재하지 않겠지만 시행착오를 거치며 최선의 해답을 찾으려 노력하고 있다. <그믐>은 초연 때 만들어진 무대 세트에 자막 스크린을 설치하기가 어려워 폐쇄형 문자 통역을 진행했다. 좌석에 단말기를 비치하고 AUD사회적협동조합의 실시간 문자 통역 플랫폼인 ‘쉐어타이핑’ 앱으로 자막을 제공했다. 이때 단말기 화면의 불빛이 다른 관객의 관람을 방해하지 않도록 해당 좌석을 맨 뒷줄로 배치하고, 화면에 눈부심을 방지하는 필름을 붙였다.
지난 7월 남산예술센터에서 ‘배리어프리 공연 제작 워크숍’을 열었다. 이렇게 제작 노하우를 공유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수많은 공연의 배리어프리 버전을 나 혼자 제작할 수는 없다. 더 많은 배리어프리 공연이 만들어지려면 창작자들이 직접 제작에 나설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유니버설 디자인(성별, 연령, 국적, 장애 등에 상관없이 누구나 손쉽게 쓸 수 있는 제품 및 사용 환경을 만드는 디자인)처럼 창작자들이 처음부터 장애 여부에 상관없이 누구든 즐길 수 있는 콘텐츠를 만드는 날이 오기를 희망한다.
배리어프리 공연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어떻게 달라지길 기대하는가?
우리 사회에는 장애인을 위한 공연은 당연히 무료여야 한다고 여기는 분위기가 있다. 하지만 나는 장애인도 자신들이 즐긴 콘텐츠에 대해 정당한 비용을 지불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야 장애인이 수혜자가 아닌 소비자로서 당당하게 목소리를 높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몇몇 장애 관련 단체에서 남산예술센터의 배리어프리 공연이 유료라는 이유로 홍보에 협조해 주지 않아 답답함을 느꼈다. 배리어프리 공연이 활성화되기 위해서는 비장애인뿐 아니라 장애인의 인식도 바뀔 필요가 있다.

*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194호 2019년 11월호 게재기사입니다.
* 본 기사와 사진은 “더뮤지컬”이 저작권을 소유하고 있으며 무단 도용, 전재 및 복제, 배포를 금지하고 있습니다. 이를 어길 시에는 민, 형사상 법적책임을 질 수 있습니다.

글 | 안세영
사진제공 | 남산예술센터, 이강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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