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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ULTURE INTERVIEW] <로마 비극> 이보 반 호브 [No.194]





전 세계 하나의 우주

다른 사람들이 당신에게 기대하는 것에 결코 흔들리지 말 것. 당신이 가고자 하는 방향이 때론 성공적이지 못하더라도 당신 자신의 고유한 아이디어를 따라가야 한다. 그게 성공으로 가는 방법이다. 만약 젊은 세대 연출가에게 딱 하나의 조언을 할 수 있다면 어떤 이야기를 해주겠냐는 마지막 질문에 이보 반 호브는 이 같은 답변을 들려주었다. 클리셰처럼 들리겠지만, 이보다 진실된 말은 없다면서. 벨기에 출신으로 암스테르담에 뿌리를 내린 후 전 세계 공연의 중심지 뉴욕과 런던 양쪽을 호령하는 지금 이 시대를 대표하는 연출가. 그가 전해 준 클리셰 같은 이야기를 기사 첫 부분에 옮긴 까닭은 그가 이뤄낸 눈부신 성취가 40년 가까이 차근차근 한 걸음씩 자신의 길을 만들어온 결과이기 때문이다.



남다르게 출발해 꾸준히 걸어온 길

ITA(Internationaal Theater Amsterdam: 이보 반 호브가 예술감독으로 이끌어온 토닐 그룹 암스테르담의 새 이름) 극장에서 보내는 평소 하루 일과가 어떻게 되나. 어시스턴트를 통해 오늘 인터뷰 일정을 조율하는 과정에서 시간을 굉장히 세세하게 나눠 쓴다는 인상을 받았다.
보통 아침 9시에 극장에 출근해서 하루를 시작한다. 우리 극장은 오전 11시 30분부터 공연 연습이 시작되기 때문에 20분 정도 걸리는 간단한 회의는 연습 전에 하는 편이다. 오늘 아침에는 아까 본 것처럼 2년 후에 공연할 작품 회의 계획을 세우고 있었다. 오후 4시에 연습이 끝나면 다시 사무실로 돌아와서 저녁 6시에 사무실을 떠나기까지 해야 할 나머지 회의들을 한다. 물론 상황에 따라 필요하면 퇴근 시간 이후에도 추가 연습을 진행할 때도 있다. 하지만 나는 일을 할 때 스위치 전환이 빠른 사람이다. 연출가로서 리허설 같은 예술적인 일을 하다가 곧바로 내년에 할 작업 관련 회의 같은 실용적인 일을 수행하는 데 전혀 문제가 없다. 아주 잘 단련돼 있다.

근데, 당신처럼 바쁜 사람이 모든 연습에 다 참여한다는 건가.
물론. 당연한 일 아닌가.

나로서는 다소 놀라운 이야기다. 당신이 1981년에 만든 첫 번째 연극 <루머스>는 자전적 이야기를 바탕으로 하는 짧은 이야기에 비전문 배우들이 출연한 소규모 작품이었던 걸로 알고 있다. 오래전 일이지만 어떻게 시작된 일이었는지 궁금하다.
1980년대 초, 정식 극장에 올라가는 연극이 아니라 항구 공터 같은 곳에서 공연하는 작품으로 연극을 시작했다. 당시 얀과 나는 극장이 아닌 공간을 우리의 극장으로 만들어서 공연을 했고, 어떻게 보면 그게 우리가 추구했던 이머시브 시어터의 출발점이었다.(얀 베르스베이펠트는 이보 반 호브의 모든 작업을 함께하는 무대디자이너로, 두 사람은 40년 가까이 관계를 유지해 오고 있는 인생 파트너이기도 하다. 1980년, 두 사람이 브뤼셀에서 친구들을 통해 처음 만났을 당시 반 호브는 앤트워프에서 법학을 공부하고 있었고, 베르스베이펠트는 뷔르셀 예술 학교에 다니고 있었는데, 연극을 하고 싶어 한 반 호브의 뜻에 따라 함께 연극 작업을 하게 된다.) 초기에는 우리가 직접 쓴, 대부분 내가 썼지만 잘 쓰진 못한 대본으로 공연하다 보니 현대극을 주로 했는데 그 뒤로 몇 년 지나지 않아 내 자신이 셰익스피어 작품 같은 고전을 하고 싶어 한단 사실을 깨달았다. 그 말은 곧 더 폭넓은 관객에게 다가가야 하고, 공연 규모는 작더라도 큰 프로덕션을 꾸려야 한다는 의미였다. 그때가 스물다섯 살이었으니까 내가 하고 싶은 작업에 대해 꽤나 일찍 깨달은 셈이다.



이십 대 초반에 연극을 시작해 사십 대 초반에 토닐 그룹 암스테르담을 이끌게 됐다. 연출가 경력에서 중요한 변곡점이 됐다 하더라도 벌써 20년 가까이 이곳을 고집하는 특별한 이유가 있을까.
연극 작업을 시작한 처음 10년 동안은 벨기에에 있는 작은 규모의 단체에서 꾸준히 연극적 실험을 했다. 서른 살에 네덜란드의 작은 극장 예술감독직을 제안받아 네덜란드에 자리 잡게 됐는데, 그때부터 규모가 큰 프로덕션 작업을 하게 됐다. 네덜란드의 좋았던 점은 정부 예술 지원금이 풍부한 데다 네덜란드인이 아니더라도 지원금 혜택을 받을 수 있었단 거다. 2001년에 토닐 그룹 암스테르담의 예술감독을 맡게 된 게 내게는 바로 어제 일 같은데, 내게 이곳은 거대한 실험실이나 다름없는 공간이다. 극단에 소속된 열다섯 명의 배우들과 모험 같은 큰 규모의 작업들을 하면서 내 연극 세계를 계속 발전시킬 수 있었다. 당시 우리에게는 세계적인 수준의 단체가 되겠다는 열망이 있었고, 10년 전부터는 부에노스 아이레스, 칠레, 뉴욕, 모스크바 등 세계 여러 도시에서 공연할 수 있는 성공을 거두게 됐다.

극장 운영 방침 중 하나가 학생들이 부담 없이 공연을 볼 수 있도록 할인 혜택을 제공하는 것이라고 들었다. 관객과의 만남 같은 공개 석상에서 학생들이 객석 3층 구석 자리로 내몰리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말하는 걸 본 적이 있는데, 명망 있는 극장의 운영자로서 젊은 세대를 위해 사회적 책임을 다해야 한다고 느끼나.
물론이다. 그리고 우리 극장은 티켓 가격 자체가 저렴하다. 가장 좋은 좌석 등급의 티켓을 20~25유로(약 2만 5천 원~3만 원) 정도면 살 수 있다. 단, 가격 탄력제를 시행하고 있기 때문에 관객이 몰리는 인기 작품은 사전 판매율이 70 퍼센트 이상일 경우 개막일이 다가올수록 티켓가가 올라간다. 비행기 티켓처럼 말이다. 하지만 작품이 아무리 흥행하더라도 학생 관객들이 저렴한 돈으로 무대가 잘 보이는 곳에서 공연을 관람할 수 있는 기회는 그대로 남겨둔다. 심지어 개막일에도 마찬가지다. 미래의 관객이 될 수 있는 젊은 세대에게 극장 문을 닫아두어서는 안 된다. 그들이 쉽게 극장을 찾을 수 있도록 그들을 향해 항상 문을 열어두어야 한다.




지금 이 시대를 비추는 거울

11월에 서울 공연이 예정돼 있는 <로마 비극> 이야기를 해보자. <로마 비극>은 2007년 여름 암스테르담에서 초연된 작품인데, 어떻게 셰익스피어의 로마 비극 세 편을 엮을 생각을 하게 됐나.
<로마 비극>은 내가 정치적인 주제를 뚜렷하게 드러낸 첫 번째 작품이다. 물론 세상을 좌파와 우파로 나누는 정치 이야기는 아니다. 내가 다루고 싶었던 것은 정치가와 정치가 이뤄지는 매커니즘에 대한 이야기였다. 나는 9.11 테러가 세상을 완전히 바꾸어 놓았다고 생각한다. 9.11 테러 발생 이후의 세계는 그 이전의 세계와 같지 않다. 전과 달라진 세상에서 나는 어떤 예술관을, 어떤 예술 세계를 추구해야 할까. 9.11 테러가 일어났던 2001년 이 같은 고민에 빠졌고, 그러한 고민에서 파생된 <로마 비극>을 만들기까지 6년이라는 오랜 시간이 걸렸다. 사실 <로마 비극>은 어떻게 보면 훌륭한 리더십과 덜 훌륭한 리더십의 미묘한 경계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무슨 이야기냐면, 사회 문제를 두고 누군가 어떤 결정을 내릴 때, 그 또는 그녀는 그게 더 나은 사회를 위한 선택일 거라 생각한다. 하지만 결정을 내린 그 자신이 그게 분명 더 좋은 결정이었다고 믿더라도 인간은 누구나 실수를 할 수 있으며, 잘못된 판단은 사회에 큰 재앙을 가져온다. 예를 들면 사람들은 더 나은 사회를 위해 좋은 의도를 가지고 사람을 죽이기도 한다. 그런데 살인에 좋은 의도라는 게 있을 수 있을까. 셰익스피어가 로마를 배경으로 쓴 세 편의 희곡 <코리올레이너스>, <줄리어스 시저>, <안토니오와 클레오파트라>에는 이 모든 이야기가 담겨 있고, 우리 사회에서 볼 수 있는 정치적 리더들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이 작품을 공연할 때마다 오늘날을 비춰보는 거울 같다는 인상을 받는다.

혹시 이야기를 구성하는 데 좀 더 구체적인 계기가 있었을까.
이 이야기를 처음 떠올리게 된 아이디어 자체는 매우 간단했다. 로스앤젤레스에서 휴가를 보내고 있을 때였는데, 하루는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갑자기 전 세계에 시차가 존재한다는 사실이 번뜩 머릿속을 스쳐갔다. 로스앤젤레스는 이제 막 아침이 시작되지만, 오스트레일리아는 벌써 그날 하루가 끝났다는 사실 말이다. 그때 문득 전 세계의 정치가 매일 스물네 시간 동안 끊임없이 계속되는 24시간 경제 비즈니스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매 순간 세계 어딘가에서 누군가는 전 세계에 영향을 줄 만한 중요한 결정을 내리고 있을 테니까. <로마 비극>은 이런 ‘24시간 정치’를 무대에 옮기고 싶어서 시작됐다.

아직 공연을 보기 전이라 내가 생각하는 게 맞을지 모르겠지만, 『코리올레이너스』와 『줄리어스 시저』는 사람들이 얼마나 쉽게 정치가들에 의해 선동되는지를 보여주지 않나. 뉴스가 일종의 엔터테인먼트가 되어버려 진실을 알기 힘든 시대에 혹시 이 같은 경고 메시지를 전하고 싶었나.
나는 연극 연출가이지, 정치가가 아니다. 그리고 나는 도덕주의자도 아니라 연극에서 도덕적으로 옳은 이야기를 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로마 비극>은 단지 셰익스피어가 써놓은 아름다운 야망과 끔찍한 실수, 실패의 난폭함 같은 이야기를 무대에서 가장 잘 표현될 수 있는 방법으로 펼쳐 놓을 뿐이고, 그걸 보면서 관객들이 무얼 생각하는지는 그들에게 달려 있다. 어쩌면 어떤 관객들은 내가 싫어하는 정치가를 보면서 ‘오, 난 저 정치인이 마음에 드는데’ 하고 생각할지 모른다. 그래도 전혀 상관없다.

이번 <로마 비극>의 등장인물들은 지나치게 오만했던 코리올레이너스처럼 제각각 성격에 비극적 결함이 있지 않나. 그 가운데 당신이 가장 연민을 느낀 인물은 누구인가.
연극 작업을 할 때 나는 연출가로서 그 어떤 캐릭터도 연민하지 않는다. 셰익스피어의 튜더 왕조의 왕 세 명의 이야기를 묶은 <킹스 오브 워> 중 한 편이었던 <리처드 3세>를 예로 들자면, 이렇게 말하고 싶진 않지만, 사람들을 죽임으로써 권력을 손에 넣는 리처드 3세는 누가 봐도 악마 같은 남자다. 그러나 연출가로서 이 연극을 하기 위해서는 그의 끔직한 행동에 대해 판단을 내리는 게 아니라 그를 이해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연출가가 그를 이해하고 무대에 올려놓으면 어떤 관객은 그에게 연민을 느낄 것이고, 어떤 관객은 그가 죽어 마땅하다고 생각할 것이다. 그 판단은 관객의 몫이다. 그런데, 개인적으로 우리 사회가 점점 모든 사람들이 매일 쉽게 판단을 내리는 세상이 되어가는 게 안타깝다. 심지어 요즘에는 정치인들조차 어떤 일에 대해 아무런 뉘앙스를 드러내지 않고 ‘찬성’ 또는 ‘반대’ 같은 짧은 메시지를 트위터에 올리지 않나. 서로가 서로를 탓하면서 누군가를 희생양으로 만드는 것, 이는 연출가로서, 그리고 한 개인으로서 내가 하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일이다.



이번 작품 무대 세트 역시 실시간 영상 사용이 두드러지게 눈에 띄더라. 영상 요소가 잘 결합된 무대 세트는 당신 연극의 상징적인 요소이기도 한데, 이 같은 연출 방식을 선호하는 이유는 뭔가.
내 모든 작품에 영상 사용을 고집하는 건 아니지만, 우리 극단이 무대 영상 사용에 혁신을 일으킨 부분이 있다고 생각한다. 지금처럼 연극에서 영상 사용이 활발해지기 이전에 높은 수준의 라이브 영상을 쓰기 시작했으니까. 그리고 이를 점차 하나의 연극적 요소로 발전시켰는데, 나는 오늘날 영상이 흡사 소리를 키워주는 마이크와 다를 바 없는 연극 도구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이번 <로마 비극> 같은 경우에는 정치인들이 대중들과 소통하기 위해 사용하는 수단 중 하나가 TV 미디어라는 점에서 더욱 적극적으로 이를 활용했다. 미디어를 잘 활용하는 정치인이 있다면 분명히 그렇지 못한 정치인도 있지 않나. 미디어가 어떻게 정치에 이용되는가. 미디어의 여러 측면을 보여주는 것 또한 이번 작업에서 주목했던 부분이다. 때문에 셰익스피어 시대를 무대로 옮기지 않고 오늘날의 사회적인 공간처럼 무대를 연출하는데, 5시간 30분의 공연 시간 동안 관객들은 자유롭게 극장 안팎을 오갈 수 있다. 공연 중 핸드폰을 사용해도 되고, 무대 위에 올라 배우들하고 사진을 찍어도 된다. 대부분의 공연에서 금지하는 것들이 허용되는 아주 민주적이고 자유로운 공연이다.

마지막으로 궁금한 질문인데, 셰익스피어가 남긴 많은 유산 가운데 당신이 가장 좋아하는 작품은 무엇인가. 지금까지 가장 많이 반복해 읽었거나 또는 가장 많이 관람한 작품 말이다.
글쎄. 나는 셰익스피어를 하나의 우주처럼 여긴다. 그의 모든 작품은 한 편을 따로 떼어 생각할 수 없다. 내가 셰익스피어를 사랑하는 이유는 그의 세계관 때문인데 이를 테면 그가 인간을, 사회를, 세상을 바라봤던 시선들이 내 작업에 끊임없는 영감을 준다. 셰익스피어의 작품들은 인간의 좋은 면과 나쁜 면을 모두 다층적으로 담고 있기 때문에 그의 작품을 할 때 단 한 번도 지루함을 느껴본 적이 없다. 물론 그의 작품을 사랑하는 이유 중 하나로 아름다운 언어를 빼놓을 수 없다. 나는 기본적으로 비극을 좋아하기 때문에 특히 셰익스피어의 비극들은 통째로 좋아한다. 그가 남긴 비극들은 내게 하나의 우주다.



*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194호 2019년 11월호 게재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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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배경희
사진 | Jan Versweyvel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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