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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OTLIGHT] <다윈 영의 악의 기원> 박은석·최우혁, 죄의 연대기에뛰어든 두 남자 [No.193]





<다윈 영의 악의 기원> 박은석·최우혁
죄의 연대기에뛰어든 두 남자

박지리 작가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한 서울예술단 가무극 <다윈 영의 악의 기원>이 1년 만에 돌아온다. 초연 당시 원 캐스트로 열연을 펼쳤던 니스 역의 박은석, 다윈 역의 최우혁과 함께. 가상의 계급 사회를 배경으로 한 이 작품은 최상위층 엘리트 학교 모범생 다윈 영이 30년 전 일어난 살인 사건의 진실을 추적하는 과정에서 가문의 비밀을 마주하는 이야기다. 아버지에서 아들에게로 이어지는 죄의 연대기는 어떻게 두 배우를 매료시켰을까.



쉽지 않았던 첫걸음

두 분은 <다윈 영의 악의 기원>을 통해 처음으로 한 무대에 섰어요. 초연 당시 함께 연기해 본 소감이 어땠나요?

박은석_ 저는 전부터 우혁이를 만나보고 싶었어요. 우혁이의 데뷔작인 <프랑켄슈타인>을 보고 노래도 잘하고 매력 있는 배우라고 생각했거든요. 사실 처음에는 겉모습만 보고 나이가 좀 있는 친구인 줄 알았는데… 그런 점에서 동질감이 느껴지기도 하고…. (일동 웃음) 왠지 만나면 친해질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아니나 다를까 금방 친해졌어요. 저나 우혁이나 학창 시절 운동선수로 활동해서 그런지 성향이 잘 맞았어요. 솔직한 성격도 좋았고요.

최우혁_ 저도 데뷔 전부터 은석 형을 알고 있었어요. 대학 입시 때 형이 <드라큘라>의 ‘Fresh Blood’를 부르는 영상을 보며 노래 연습을 했거든요. 실제로 처음 만난 건 <프랑켄슈타인> 오디션장에서였는데 그때도 형이 노래를 너무 잘해서 기억에 남았어요. 작년에 이 작품을 하면서 형이랑 대화를 많이 나눴어요. 다윈과 니스가 함께 나오는 장면이 많지는 않지만, 둘의 관계가 중요하거든요. 부자간의 밀도 있는 연기를 보여줘야 서사에 설득력이 생기기 때문에 형이랑 대사를 바꿔가며 이런저런 시도를 많이 해봤어요. 그러면서 사적으로도 고민을 나눌 수 있는 친한 형 동생 사이가 됐죠. 은석 형뿐 아니라 극 중 친구 사이였던 레오 역의 (강)상준 형하고도 정말 친해져서 공연 끝나고 계속 연락하며 지냈어요.

박은석_ 실제로 배우들끼리 사이가 좋았기 때문에 무대에서도 좋은 케미를 보여드릴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최우혁_ 한번은 은석 형이랑 러너 역의 (최)정수 형이랑 저희 ‘영’ 가문 삼부자만 모여 술자리를 가진 적이 있어요. 그때 농담 아닌 농담으로 재연 때 우리 중 한 명이라도 빠지면 하지 말자고 약속했어요. 그만큼 저희 모두 이 작품에 혼신을 다했어요.

창작 초연에 원 캐스트로 출연한 만큼 부담감이 컸겠어요.

박은석_ 방대한 분량의 소설을 두 시간 반짜리 뮤지컬로 옮기는 건 정말 쉽지 않은 작업이었어요. 소설은 심리 묘사도 자세하고 드라마틱한 장면이 많은데, 뮤지컬로 옮기면 어쩔 수 없이 생략되는 부분이 생기잖아요. 작업 과정에서 어떤 부분은 덜어내고 어떤 부분은 살을 붙일지 배우와 창작진이 서로 의견을 나누고 고민하는 과정이 필요했는데, 초연 당시 주어진 시간이 짧다 보니 거기서 오는 스트레스가 만만치 않았어요. 배우 입장에서는 반복적인 연습을 통해 그 인물이 완전히 몸에 익고 안정된 상태에서 무대에 올라가고 싶으니까요.

최우혁_ 초연 때도 연습 기간에 추석 연휴가 끼어 있었는데, 저랑 은석 형, 상준 형은 추석 때도 연습실에 나왔어요. 휴일에 쉬는 게 두려워서 연습을 한 건 그때가 처음이에요. 이전에 창작뮤지컬 <벤허> 초연에도 참여한 경험이 있지만 그때는 같은 역할을 맡은 선배님이 많이 계셔서 선배들의 연기를 참고할 수 있었어요. 그런데 여기서는 원 캐스트이다 보니 누구에게도 의지할 수가 없더라고요. 오롯이 저 혼자 힘으로 해내야 했죠. 그때 얼마나 에너지를 쏟아 부었는지 글쎄 탈모까지 왔다니까요! 그래서 원래는 탈색하고 브론즈 색으로 염색을 할 예정이었는데 그렇게 못했잖아요.

박은석_ 저도 첫 공연을 올리고 바로 몸살감기가 왔어요. 원 캐스트라서 쉴 수도 없다 보니 날마다 링거를 맞고 무대에 섰죠. 그래도 첫 공연이 끝나고 관객분들이 좋아해 주시는 걸 보고 안심했어요. 끝까지 최선을 다해 만들긴 했지만 관객분들은 과연 어떻게 볼까 두근두근했거든요. 다행히 우리가 대본을 처음 봤을 때 들었던 좋은 느낌이 관객에게도 잘 전달된 것 같아 조금 더 믿음을 가져도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처음 대본을 봤을 때 어떤 점이 매력적으로 느껴졌는데요?

박은석_ 일단 그동안 접하지 못한 소재와 장르의 작품이라서 새로웠어요. 반영웅을 주인공으로 한 추리물이자 성장물인데, 그 안에 친구, 가족, 사회 구조에 대한 여러 가지 철학적 문제를 다루고 있잖아요. 공연을 본 관객이 각자의 입장에서 다양한 걸 느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이야기의 핵심에는 삼대에 걸친 죄의 대물림이 있는데, 그 내막을 알면 ‘누가 이 가족을 비난할 수 있을까’란 생각이 들면서 먹먹해져요. 그런 정서가 음악에도 잘 묻어 나와서 좋았어요.

최우혁_ 처음에는 제목만 듣고 난해하다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대본과 원작 소설을 읽어보니 너무 재밌더라고요. 무엇보다 분위기가 제가 좋아하는 <해리 포터> 시리즈를 연상시켜서 좋았어요. 머릿속으로 밤이면 어둠이 드리우는 고풍스런 기숙 학교의 풍경을 상상해 보게 됐죠. 음악도 그동안 접해 보지 못한 스타일이라 더욱 의욕이 샘솟았어요. 다만 살짝 걱정됐던 건 다윈이 열여섯 살이라는 거? (웃음) 전 그 전까지 <벤허>의 메셀라, <명성황후>의 홍계훈 같은 묵직한 역할을 해왔으니까요. 다행히 전작 <번지점프를 하다>에서 고등학생 현빈을 연기한 경험이 있어서 다윈 역에 저를 캐스팅해 주신 것 같아요. 사실 <번지점프를 하다> 때도 처음 제안받았던 역할은 선생님인 인우 역이었는데, 연기 변신을 위해 학생인 현빈 역에 도전한 거였거든요. 그게 다윈 역으로 이어진 건 큰 행운이었죠.

박은석_ 저도 과거의 니스를 연기할 땐 잠깐 교복을 입고 출연해요. 재작년에 공연한 <모범생들>에 이어 작년의 <비클래스>하고<다윈 영의 악의 기원>까지, 어쩌다 보니 2017년부터 매년 교복을 입고 무대에 서고 있네요. 이게 제가 젊음을 유지할 수 있는 비결이 아닌가 싶습니다. (웃음)

각자 캐릭터를 표현하는 데 중요하게 생각한 점은 무엇인가요?

박은석_ 과거에 저지른 일에 대한 죄책감과 아들 다윈을 향한 사랑을 표현하려고 노력했어요. 원작 소설을 읽어 보면 니스는 정말 안쓰러운 인물이에요. 16세에 아버지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죄를 저지르고, 자기 삶을 포기한 채 미친 듯이 공부만 했거든요. 그렇게 해서 이제는 존경받는 위치에 올랐지만, 사람들이 자신을 존경스런 눈빛으로 바라볼 때마다 스스로가 역겹게 느껴지는 거죠. 또 다윈을 죄인의 자식으로 태어나게 만든 데 대해서도 미안함을 느끼고 있어요. 그래서 더 좋은 아버지가 되려고 노력하죠. 그런 복잡 미묘한 심리를 계속 품고 연기하는 게 어려웠어요. 뮤지컬에서는 니스의 이야기가 자세히 그려지지 않지만, 배우가 마음속으로 그 모든 시간을 살아내야 연기에 밀도감이 생기거든요.

최우혁_ 저한테 제일 고민이었던 점은 ‘뮤지컬의 한정된 장면 안에서 다윈의 상냥함과 올곧음을 어떻게 보여줘야 할까’였어요. 또 니스와 만나는 장면이 별로 없는데 다윈이 아빠를 사랑하고 신뢰하는 마음을 어떻게 보여줘야 하는지도 관건이었죠. 다윈이 아빠를 위해 죄를 저지르는 걸 납득시키기 위해서는 그 전에 얼마나 아빠를 사랑하는지를 보여줘야 하니까요. ‘윈저 노트’ 장면에서 아빠에게 안길 때, 거울 앞에서 아빠를 바라볼 때 표정에 신경을 썼어요. 또 초연 때는 다윈이 마지막 선택을 하기까지 얼마나 괴로워하고 고민하는지 보여줄 수 있는 장면이 많지 않았기 때문에 내면의 변화를 조금씩 단계적으로 표현했어요. 아빠를 사랑해야 한다고 다짐할 때, 레오의 전화를 받을 때, 9지구에서 레오를 만날 때 표정과 목소리 톤의 변화를 아주 세심하게 연습했죠. 이때 감정선이 제대로 살지 않으면 그냥 ‘삼부자가 나쁜 놈들이네’ 하고 끝나 버리거든요. 우리 목표는 나쁜 놈들이지만 공감이 가게끔, ‘나라면 과연 다르게 행동할 수 있었을까’ 생각하게 만드는 건데 말이에요. 마지막에 내가 잘 채워넣지 못하면 삼부자의 이야기가 완성되지 않는다는 점에서 막중한 책임감을 느꼈어요.

극악무도한 음악 얘기도 빼놓을 수 없죠. 고음과 불협화음, 변박이 난무하던데 그중에서도 특히 어려웠던 곡을 꼽는다면요?

최우혁_ 아무래도 러너, 니스, 다윈의 3중창 ‘푸른 눈의 목격자’죠. 보통 3중창이면 한 명이 고음을 맡든지 고음 파트를 서로 나눠서 부르는데, 이 노래는 셋 다 고음으로 부르거든요. 곡 길이도 5분 30초나 돼요. 제일 절망적인 건, 음악이 빠르면 고음을 확 지르면 되는데, 이건 음악이 느려서 ‘고오오으으음’을 내다가 진이 다 빠진다는 거예요. 초연 때 이 곡이 끝나고 암전되면 저희끼리 서로 고생했다고 토닥이며 퇴장했다니까요. 연습실에서도 다들 저희를 영 가문 ‘삼부자’가 아니라 ‘삼명창’이라고 불렀어요. 그래도 부르기 힘들어서 그렇지 곡은 다 좋아요. 안 그래요, 형님? 솔직히 뺏기고 싶지 않잖아요.

박은석_ 그럼. 니스는 1막부터 가만히 서서 아름다운 아리아를 부르는 게 아니라 격정적인 노래를 계속하거든요. 호흡이 안정되지 않은 상태에서 음역대까지 높은 곡을 부르다 보니 현기증이 나요. 중간중간 이러다 쓰러지겠다 싶은 위기감이 찾아오는데, 대체로 배우가 힘들면 관객은 즐거워하더라고요. (웃음) 그걸로 위안을 삼고 있죠.


객석에 던지는 질문

재연을 준비하며 새롭게 와닿은 장면이 있을까요?

최우혁_ 저는 ‘윈저 노트’의 가사가 새삼스럽게 마음에 들어오더라고요. 니스와 다윈이 함께 부르지만 실제로는 둘의 대화가 아닌 각자 마음의 소리를 담은 노래예요. 이번에 연습하면서 형이 노래하는 걸 듣는데, 니스가 ‘난 (아버지랑) 다르니까 다 괜찮아, 난 해낼 거야’라고 노래하는 부분이 너무 슬프게 다가왔어요. 또 다윈은 아빠처럼 멋진 어른이 되고 싶다고 생각하면서 ‘난 정말 어른이 될까?’라고 노래하는데 이게 나중에 역설적인 의미를 갖게 되잖아요. 결정적으로 마지막 가사가 ‘그리울 거야,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시간’이에요. 그게 얼마나 의미심장한 가사인지 뒤늦게 깨닫고 소름이 돋았어요.

박은석_ 이희준 작가님의 가사는 자꾸만 곱씹게 만들어요. 음미할 수 있는 글이에요. 그래서 관객분들이 이희준 작가님을 좋아하는 게 아닐까 싶어요.

최우혁_ 사실 초연 때는 박자 때문에 하도 고생해서 가사를 음미할 여유가 없었어요. 이 곡이 4분의 7박자와 4분의 4박자를 넘나들거든요. 배우가 들어가고 싶을 때 들어가면 틀리고, 들어가면 안 될 것 같을 때 들어가야 맞아요.

박은석_ 이런 뮤지컬 넘버는 다른 곳 어디에도 없을걸요. 세계적인 뮤지컬배우들한테 다 숙제를 내보고 싶어요. 넥타이를 매는 연기를 하면서 4분의 7박자에 맞춰 노래를 부를 수 있는지!

재연에는 다윈의 새로운 솔로곡이 추가된다면서요?

최우혁_ 신곡은 다윈이 어떻게 아빠를 이해하게 됐는지, 왜 갈등 끝에 극단적 선택을 하게 되는지를 설명하는 노래에요. 이 곡도 난이도가 높지만, 그렇다고 가창에만 치중하면 안 되고 울부짖는 감정을 잘 살려야 해요. 이 노래가 뒤이어 벌어질 사건에 대한 복선 역할을 하거든요. 또 이 노래로 삼부자의 운명에 마지막 퍼즐이 맞춰지고, 이어지는 삼중창 ‘푸른 눈의 목격자’로 완성되는 구조예요. 러너와 니스가 앞서 쌓아온 드라마를 잘 마무리 짓는 게 저한테 주어진 제일 큰 숙제죠.

박은석_ 초연 때는 배우들도 각자 자기가 생각한 걸 표현하기 바빴다면, 지금은 좀 더 객관적인 시선에서 우리가 놓쳤던 부분을 손보고 있어요. 나한테만 집중하다가 서로를 바라보니까, 내가 수행해야 할 역할이 뭔지 더 명확히 보이더라고요. 작품 안에 이런 요소가 있었구나, 내가 굳이 힘주지 않아도 작품을 믿고 가면 되겠구나 하는 발견을 하게 돼요. 관객분들이 보시기에도 재연이 좀 더 쉽고 깊게 이입할 수 있는 극이 되지 않을까 싶어요.

작품 안에서 후드가 죄의 대물림을 설명하는 중요한 소품으로 사용되잖아요. 그런데 니스는 왜 이 후드를 버리거나 태워버리지 않고 간직해 둔 걸까요?

박은석_ 이성적으로 생각하면 범죄의 증거가 될 수 있는 도구는 없애버리는 게 맞죠. 그런데도 니스가 후드를 지하실 깊숙이 보관해둔 건 양심의 가책 때문이라고 생각해요. 자기 죄를 잊지 않고, 스스로를 벌주기 위해 가지고 있는 거죠. 수도사의 고행과 비슷한 의미라고 생각해요.

이 작품에는 아버지와 자식의 관계가 아주 다양한 형태로 등장해요. 아버지 세대인 니스, 버즈, 제이는 자식 세대인 다윈, 레오, 루미뿐 아니라 그들의 아버지와 어떤 관계에 있는지가 드러나죠. 아버지 러너에 대한 니스의 감정은 뭘까요?

박은석_ 아버지를 사랑하면서도 원망하죠. 내가 이렇게 힘든 삶을 살게 만든 원인 제공자니까. 어떻게 보면 부모와 자식의 애증 어린 관계는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부분인 것 같아요. 어렸을 때 부모님한테 반항하면서 ‘이러려면 날 왜 낳았어?’ 이런 생각 한 번쯤 해보잖아요. 솔직히 성인이 되어서도 각박한 사회를 살아가다 보면 ‘내가 이렇게 힘들게 사는 건 부모님 때문’이라고 책임을 전가하고 싶은 마음이 조금은 생기지 않나요? 실은 전혀 부모님 탓이 아니라는 걸 알면서도요. 그런 점에서 니스라는 인물이 관객의 공감을 살 수 있을 것 같아요.

다윈은 어때요? 아버지 니스를 원망하는 마음이 있을까요?

최우혁_ 제가 연기하는 다윈은 아빠 탓도, 할아버지 탓도 하지 않아요. 대신 아빠와 할아버지가 살인을 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에 대해 생각해요. 애초에 할아버지 러너가 살인을 저지른 건 대대장이 러너를 이용하고 배신했기 때문이잖아요. 저는 그런 사람들에게 죄를 묻는 마음이거든요. ‘아버지 때문에 내가 이런 선택을 했어’가 아니라 ‘우릴 이렇게 만든 건 세상이야. 왜 우리를 이렇게 만들었어?’라고 생각하는 거죠. 그래서 다윈은 아빠를 미워하지 않아요.

그렇다면 피날레에서 다윈이 루미에게 ‘미안해’라고 말할 때의 속마음은 무엇인가요?

최우혁_ 피날레인 장례식 장면에서도 감정의 흐름을 보여주고 싶었어요. 사실 무덤에 꽃을 놓을 때까지만 해도 다윈은 죄책감에 시달리는 상태예요. 하지만 할아버지와 아빠를 마주한 뒤 결국 가족의 품 안에 숨어버리죠. 계속해서 진실을 찾지 않겠냐는 루미에게 ‘미안해’라고 답하지만, 고개를 돌리자마자 표정이 변하거든요. 그리고 객석을 한 번 쳐다봐요. ‘당신들도 나와 같은 상황이라면 다른 선택을 할 수 있었을까? 누가 나한테 죄를 물을 거지?’라는 의미를 담은 시선이죠. 그렇다고 다윈이 구질구질하게 자기를 변호하는 것처럼 보이게 만들고 싶진 않아요. ‘난 어른이 됐고 과거는 여기 놓고 가겠다’라는 단호한 결심이 보이면 좋겠어요. 그래서 초연 때 마지막 장면만 되면 굉장히 긴장했어요. 내 표정이 객석 중앙뿐 아니라 사이드에 앉은 관객한테도 보이는 동시에 루미한테는 보이지 않게끔 신경 써서 연기했죠. 한 가지 더 얘기하자면, 장례식 내내 버즈만큼은 절대 쳐다보지 않는다는 저만의 원칙을 정했어요. 그만이 다윈을 동요하게 만들 수 있는 유일한 인물이니까요. 관객들은 알아차리지 못할 수도 있지만 이런 계획 없이 연기하면 제가 완성을 못한 느낌이 들어요.

‘용서받지 못할 죄를 짓고 어른이 된다’가 이 작품의 메인 카피잖아요. 두 분은 언제 스스로 어른이 되었다고 느꼈어요? 이런 때 아이는 어른이 된다고 새롭게 정의를 내려본다면?

최우혁_ 더 이상 부모님 앞에서 뭐가 필요하다는 얘기를 선뜻 꺼낼 수 없어졌을 때 처음으로 어른이 됐다고 느꼈어요. 오히려 제 또래 친구들이 부모님을 모시고 여행을 다니는 걸 보면서 철없는 저를 반성하게 되더라고요. 누군가의 보살핌만 받다가 내가 누군가를 챙겨야 하는 위치가 되었다는 걸 깨달을 때, ‘나중에 하지 뭐’라고 넘겼던 일들을 더 이상 미룰 수 없게 되었을 때 아이는 어른이 되는 것 같아요.

박은석_ 저는 어렸을 때부터 하고 싶은 것만 하고 살았어요. 사회적인 규범에서 벗어나 항상 아이처럼 살아왔죠. 하지만 조금씩 나이를 먹으면서 책임이 어깨 위에 놓이고 마냥 내가 하고 싶은 것만 하며 살 수는 없게 되더라고요. 특히 주변 사람들이 점점 나이 들어가고 죽음을 맞이하는 걸 가까이에서 지켜보면서 자연스레 삶과 죽음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되는데, 그러면서 어른이 되어가는 것 같아요. 그 밖에 어른이 되었음을 체감하는 순간이 있다면, 전보다 덜 먹어도 살이 배로 갈 때? (일동 웃음)

나이를 먹으면서 고민하는 게 달라지듯, 배우 경력이 쌓이면서 고민하는 것 역시 달라지겠죠?

최우혁_ 데뷔 때는 무대에서 제가 뭘 어떻게 하는지도 몰랐어요. 그냥 연습한 대로 하다가 정신을 차리면 커튼콜이었죠. 그럼 안도의 한숨이 나왔고요. 그 시절 저의 가장 간절한 소원은 동료 배우에게 배우로 인정받는 거였어요. 스물셋이라는 어린 나이에 데뷔해 기라성 같은 선배들 사이에서 연기하면서 주변 눈치를 많이 봤죠. 그런데 저만의 가치관 없이 다른 선배들이 하는 대로, 시키는 대로만 연기하다 보니 제 캐릭터가 없어지고 자괴감만 남더라고요. 이제는 배우로서 캐릭터에 대해 고민한다는 게 뭔지 조금 알 것 같아요. 전에는 슬픈 장면에서 슬픈 모습을 보여줄 생각만 했다면, 지금은 왜 슬픈지를 한 번 더 생각해 보고 다르게 표현할 수 있는 방법이 없는지 계속 고민해 봐요. 누군가 왜 그렇게 연기하는지 물었을 때 상대를 설득할 수 있는 힘이 생긴 거죠.

박은석_ 제가 내년이면 데뷔 10년 차인데, 그동안 많은 일을 겪고 공연 시장 구조에 대해 알게 되다 보니 그 전에 안 보이던 것들이 보여요. 공연이라는 게 철저한 협업이거든요. 톱니바퀴가 맞물려 돌아가듯 모두가 제 위치에서 제 역할을 다했을 때 작품이 잘 나오고 관객에게 좋은 선물로 돌아가는 거죠. 그 사실을 피부에 와닿게 느끼면서부터 저 혼자 잘되려고 치열하게 애를 쓰기보다는 주변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어요. 아직은 이런 제 마음을 여유가 생겼다고 봐야 할지 그저 게을러졌다고 봐야 할지 헷갈리는 상태예요. 그래도 미래에만 사로잡혀 살지는 말자고 마음먹었어요. 전에는 미래에 일어날 일을 미리 걱정하면서 살았거든요. 앞으로 좋은 일이 생길지 나쁜 일이 생길지는 내 뜻대로 통제할 수 있는 게 아니니, 마음의 부담을 덜어내고 주어진 현재에 충실하자. 요즘은 그렇게 살고 있어요.



*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193호 2019년 10월호 게재기사입니다.
* 본 기사와 사진은 “더뮤지컬”이 저작권을 소유하고 있으며 무단 도용, 전재 및 복제, 배포를 금지하고 있습니다. 이를 어길 시에는 민, 형사상 법적책임을 질 수 있습니다.

글 | 안세영
사진 | 배임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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