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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RSONA] <시라노> 나하나의 록산, 삶의 이상향인 당신에게 [No.193]





<시라노>나하나의 록산
삶의 이상향인 당신에게

검술 실력은 물론이요, 뛰어난 글솜씨로 많은 사랑을 받은 시라노. 얼마 전 그가 자신의 집 앞에서 예기치 못한 습격을받아 세상을 떠났다는 안타까운 소식이 들렸습니다. 그리고 그 후에야 록산을 향한 시라노의 애절한 사랑이 알려졌는데요, 심지어 크리스티앙이 록산에게 보낸 편지마저도 시라노의 절절한 펜 끝에서 탄생했다는 비밀이 공개됐죠. 뒤늦게 시라노의 진정한 사랑을 깨달았다는 록산을 만났습니다.

※ 이 글은 록산 역을 맡은 배우 나하나와의 대화를 토대로 작성한 가상 인터뷰이며,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당신과 시라노는 꽤 오래된 인연이었다고요.우리는 어렸을 때부터 함께 자랐어요. 큰 코를 가진 시라노를 외계인이라 놀리던 아이들을 혼내줬던 기억이 있죠. 시라노는 제게 칼을 다루는 법을 알려줬고요. 생각해 보면 시라노와 함께한 어린 시절은 가장 나다운 시간이었어요.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내가 살면서 중요하게 생각해야 하는 것은 무엇인지를 알아가는 과정이었죠. 그와 추억도 많이 나누었고요. 제게 시라노는 가장 친한 친구였고, 우린 서로를 가장 잘 알고 있는 사람이었어요. 함께 있을 때면 나를 가장 잘 알고 있는 사람이 있다는 사실에 든든한 위로를 느꼈죠.

당신이 받은 연애편지가 공개되자 큰 관심이 쏟아지더군요.그런가요? 전 편지를 참 좋아했어요. 말은 쉽게 내뱉을 수 있지만 편지는 누군가를 생각하면서 알맞은 표현을 골라 애정으로 완성한 소통의 매개체니까요. 크리스티앙을 사랑하게 된 제게 편지를 써보는 게 어떻겠냐고 권한 게 시라노예요. 마음이 담긴 편지를 쓸 때마다, 그리고 그런 편지를 받을 때마다 정말 벅차오르도록 행복했어요.

안타깝게도 크리스티앙은 15년 전 전쟁터에서 세상을 떠났죠. 처음엔 크리스티앙이 세상을 떠났다는 사실이 믿어지지 않았어요. 그를 만나러 간 전쟁터에서 돌아와 수녀원으로 갔는데, 그때부터 크리스티앙을 영원히 볼 수 없단 현실이 느껴졌죠. 지난 15년 동안 그의 추모일을 챙겼어요. 슬프지만 크리스티앙을 이해하고 그의 죽음을 깨닫는 시간이었죠.

크리스티앙이 세상을 떠난 후엔 당신도 세상과 멀어졌다고 들었어요. 그런데도 시라노와는 매주 시간을 보냈다고요.이제야 생각해 보니 크리스티앙이 세상을 떠나기 전까지만 시라노가 제게 사랑을 고백했더군요. 그 편지 속에 담겨 있던 사랑을 생각하면 가슴이 미어져 와요. 15년 동안 다른 사람은 만나고 싶지 않았어요. 다만 저와 시라노는 서로가 필요했어요. 큰 비극을 함께 겪은 만큼 함께 위로를 나눌 수 있으니까요. 우리는 한 번도 우울한 이야기를 하거나 눈물 흘리지 않았어요. 저는 시라노가 말하는 세상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수를 놓았고, 시라노는 시를 쓰면서 그렇게 시간을 보냈죠. 함께 마음에 있는 커다란 구멍을 채워 나갔고 그 덕분에 살아갈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살기 위해 서로에게 힘이 된 거죠.

그날, 시라노가 당신이 받은 마지막 편지를 보여 달라고 했다면서요.정말 이상한 날이었어요. 크리스티앙이 떠나던 날에 문득 느껴지던 불안한 기분을 느꼈어요. 그날따라 시라노에 대한 걱정이 들었죠. 심지어 오랜 세월 동안 약속을 어긴 적이 없던 그가 늦더군요. 뒤늦게 찾아온 시라노를 보자마자 설명하기 어려운 감정이 몰려왔어요. 그가 ‘좋은 저녁입니다’라고 인사를 했을 때, 엄청난 안도감과 행복, 감격을 느꼈어요. 제가 늘 목에 걸고 있던 편지는 암묵적으로 들춰내지 않았던 상처였는데…. 그날은 이상하게도 먼저 시라노가 말을 꺼냈고, 저도 시라노에게 편지를 보여주고 싶었어요. 그날이 아니면 안 될 것 같았거든요.

시라노가 크리스티앙이 보낸 마지막 편지를 다 알고 있을 때 어땠나요.발코니에서 크리스티앙, 아니, 시라노가 사랑을 말해 주던 순간은 제가 세상의 모든 사랑을 다 가진 시간이었어요. 영혼마저 꼭 닮은 사람을 만났다고 생각했으니까요. 시라노가 빛이 바랜 편지를 읽자, 내 인생에서 가장 완벽했던 순간이 생각났어요. 내가 얼마나 그 시간을 사무치게 그리워했는지…. 그때와 똑같은 목소리, 똑같은 문장을 듣자마자 무언가가 울컥 터져 나왔죠. 그러다가 깨달았어요. 시라노가…, 시라노가 그 편지를, 나를 향한 사랑을 말하고 있다는 걸요….

당신은 지금 어떻게 살고 있나요?시라노는 자신이 옳지 않다고 생각하는 것들에 대항해 끝까지 싸워내려고 했어요. 시라노가 떠난 지금은 마음이 송두리째 찢겨 나간 것 같지만, 저도 그처럼 살아가려 해요. 시라노는 늘 옳은 길을 가던 사람이니까요. 제게 시라노는 삶의 이상향과 같아요. 그리고 시라노가 마지막까지 놓지 않았던 싸움을 제가 끝내고 싶었어요. 그래서 다시 편지를 가슴으로 움켜쥐었죠.

당신에게 시라노는 어떤 존재로 기억될 것 같아요?숨이요. 항상 곁에 있어서 소중함을 모르지만 없으면 살아갈 수 없는 존재죠. 시라노가 제 품에서 눈을 감는 순간에야 이 사람이 나의 전부였다는 것을 깨달았어요. 영혼의 단짝 같은 존재. 정말 나와 많이 닮은 사람이었어요. 그는….

*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193호 2019년 10월호 게재기사입니다.
* 본 기사와 사진은 “더뮤지컬”이 저작권을 소유하고 있으며 무단 도용, 전재 및 복제, 배포를 금지하고 있습니다. 이를 어길 시에는 민, 형사상 법적책임을 질 수 있습니다.

글 | 박보라
사진제공 | CJ EN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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