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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VIEWERS TALK] <전설의 리틀 농구단>, 산 자와 죽은 자의 공 주고받기 [No.193]





<전설의 리틀 농구단>
산 자와 죽은 자의 공 주고받기

2016년 안산에서 초연한 뒤 2018년 대학로에 입성한 창작뮤지컬 <전설의 리틀 농구단>이 새로운 버전으로 돌아왔다. 친구도 특기도 없던 고등학생 수현이 우연히 만난

남고 귀신들의 소원을 들어주다가 얼떨결에 농구단에 들어가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다. 본지의 리뷰어 양성 프로그램을 통해 배출한 더뮤지컬 리뷰어 4인이 공연을 관람하고 대화를 나눴다.

* 자유로운 대화를 위해 참여자 이름은 뮤지컬 캐릭터명으로 기재했으며, 리뷰 내용은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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덩크슛의 주인공은 누구?

스위니_ 안산문화재단과 아이엠컬처가 공동 제작을 맡으면서 공연이 많이 달라졌더라. 일단 무대가 커지면서 농구 경기 장면이 더 시원스러워졌어. 그리고 여자 구청 공무원 캐릭터를 없애서 군더더기 같던 코치와 구청 공무원의 러브 스토리도 사라졌지. 외로웠던 코치에게 보상처럼 애인을 안겨주는 엔딩보다는 그가 삶의 의욕을 되찾고 좋은 선생님으로 거듭나며 끝나는 지금의 엔딩이 더 일관성 있다고 생각해.

모리블_ 지난 공연 때 수현의 이야기가 정리되지 않고 끝나는 게 아쉬웠는데, 이번엔 죽고 싶었던 수현이 살고 싶어지는 과정이 더 잘 보였어. 수학 선생님의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공부를 하는 장면, 맞고 있는 자기를 모른 척한 상태에게 서운함을 담아 ‘너 나 안 보이냐’라고 따지는 대사, 그리고 나중에 상태가 수현에게 화해를 청하면서 ‘난 이제 농구 혼자 하는 거 재미가 없다’, ‘난 이제 너 잘 보인다’라고 말하는 대사가 새로 생겼거든. 혼자였던 수현에게 친구가 생기는 걸로 어느 정도 결말이 갈무리된 느낌이야.

스위니_ 전에는 속초 시청 농구단과의 친선경기 장면도 없었어. 속초 바다로 전지훈련을 떠난 게 다였지. 지금은 수현과 농구단이 난관에 부딪히고 성취감을 얻는 과정이 더 단계적으로 그려지고 있어.

롤라_ 하지만 중간에 코치 종우에게 이야기의 주도권이 넘어가는 건 여전히 뜬금없어. 마치 이런 느낌이야. 수현이가 한창 드리블을 하고 있는데 갑자기 종우가 나타나 공을 뺏더니 덩크슛을 하고 난리가 난 거지. 우린 수현이의 덩크슛을 기다리고 있었는데!

마틸다_ 앞에서부터 귀신들이 종우를 의식하거나, 종우가 문득 친구들을 떠올리는 식의 복선을 깔아주면 좋았을 텐데. 마냥 의욕 없어 보이던 코치가 후반부에 갑자기 자신이 농구를 하는 이유는 죽은 친구들 때문이라며 눈물을 흘리는 게 느닷없게 느껴졌어.

스위니_ 왜 그 시점에 갑자기 귀신이 된 친구들을 볼 수 있게 된 건지도 모르겠어. 귀신들이 수현의 몸에 빙의된 채 말을 걸면서 시작하는 것도 아니고, 그냥 종우가 과거를 회상하다가 눈앞에 친구들이 나타나는 걸로 넘어가잖아.

롤라_ 수현과 종우를 공동 주인공으로 내세우고 싶었다면 둘의 이야기가 하나의 지향점으로 묶여야 하는데 지금은 각각 따로 놀아. 결국 귀신들 소원 풀이만 하다 극이 끝나버리는 거지.

스위니_ 나는 처음에 이렇게 상상했어. 귀신들이 겉으로는 자기들 소원을 이루기 위해서라고 말하지만, 실은 외롭고 무기력한 수현과 종우를 서로에게 희망을 주는 존재로 이어주려는 의도에서 수현을 농구단에 밀어 넣은 게 아닐까.

모리블_ 나는 귀신들이 15년이나 성불하지 못한 게 종우가 아직 이들을 마음속에서 떠나보내지 못해서라고 생각했어. 귀신들의 욕망이 아니라 종우의 욕망 때문에 붙잡혀 있는 거라고. 그래서 종우가 귀신들과 농구 한판을 하고 한풀이를 한 후에야 떠날 수 있었다고 이해했지.

마틸다_ 그렇다면 수현과 귀신들의 이야기로 시작해 종우의 이야기로 끝나는 흐름을 더 납득할 수 있겠다. 하지만 창작진이 그런 설정을 염두에 둔 것 같진 않아.



농구 한판의 구원

롤라_ 이 작품은 모든 갈등을 ‘농구 한판이면 땡’으로 해결하는데 왜 농구여야 하는지 의문이야. 죽고 싶어 하던 수현이가 농구 좀 했다고 살고 싶어진다는 게 납득이 안 돼.

스위니_ 작품 속에서 ‘농구는 혼자 하는 게 아니라 같이하는 거’라는 대사가 반복되잖아. 창작진은 농구를 하는 것처럼 누군가와 함께할 때 삶을 이겨내는 힘을 얻을 수 있다는 얘기를 하고 싶은 것 같아. 수현이 죽고 싶어 하는 이유는 모든 사람이 자기를 투명인간 취급하기 때문인데, 귀신들을 만나면서 자기를 도와주는 사람이 생기고, 농구단에 들어오면서 자기에게 관심을 가져주는 사람이 생겨. 거기서 변화의 원동력을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해. 또 농구는 ‘결과가 아니라 과정이 중요하다’고 말하잖아. 삶 역시 눈에 보이는 성과만이 전부가 아니라는 얘기지.

롤라_ 하지만 그런 메시지가 대사로 말해질 뿐 이야기로 잘 엮여 있다는 생각은 들지 않아. 함께라는 주제를 강조하려면 다섯 명의 농구단이 다 함께 으쌰으쌰 해야 하는데, 이 공연에서 수현은 상태를 제외한 나머지 셋과는 이렇다 할 관계를 맺지 않잖아. 농구는 다섯이서 하는 건데 둘만 두드러지니까 굳이 농구여야 할 필요가 있나 싶어.

스위니_ 내용만 놓고 보면 뻔한 스포츠물일 수 있어. 하지만 그게 뮤지컬이라는 형식과 만나니까 재밌고 신선하게 다가오더라. 농구를 하는 동작, 귀신이 빙의된 모습을 안무로 재치 있게 표현했잖아. 창작뮤지컬에서 안무를 전면에 내세운 작품을 찾아보기 힘든데, 용기 있게 그런 시도에 나섰다는 점을 높이 사고 싶어.

롤라_ 무대에서 땀 흘리며 뛰어다니는 배우들이 뿜어내는 생생한 에너지가 이 작품의 매력이지. 대학로에서는 20~30대 여성 마니아층을 타깃으로 한 작품이 많이 올라가는데, 일반 청소년층을 관객으로 삼은 시도도 좋았다고 생각해.

마틸다_ 글쎄, 고등학생이 나올 뿐이지 청소년을 타깃으로 한 공연인지는 잘 모르겠어. 요즘 학생들의 구체적인 고민을 반영해 만들었다기보다는 전형화된 왕따 청소년의 이미지를 재생산한 느낌이거든. 현실의 고등학생이 이 공연을 봤을 때 얼마나 공감할 수 있을지 의심스러워. 일단 요즘 애들이 조던을 알기나 할까? (웃음)

세월호와 애도의 윤리

스위니_ 작년에는 이 작품이 안산에서 제작된 작품이라는 걸 염두에 두고 봤기 때문에 속초 바닷가에서 아버지가 죽은 아들을 기다리는 장면에서 바로 세월호 사건이 떠올라 울컥했어. 사실 어디서 죽든 상관없었을 학생들을 굳이 속초 바다에서 죽은 걸로 설정한 건 세월호를 떠올리게 하려는 의도잖아. 그런데 공연을 다 보고 돌이켜 보니 그 장면이 뭘 위해 존재하는 건가 의문이 들더라. 이 작품은 살아 있는 우리가 억울하게 죽은 학생들을 기억하고 애도하는 게 어떤 의미가 있는지에 대해 이야기하지 않아.

마틸다_ 세월호 사건을 단순히 눈물을 자아내기 위한 소재로 사용하는 건 무책임하다고 생각해. 심지어 이번 공연은 세월호 사건과는 더 멀어진 것 같아. 지난 공연 때는 학생들이 수영을 하다가 사고로 죽었는데, 지금은 물에 빠진 초등학생을 구하기 위해 자발적으로 바다에 뛰어들잖아. 세월호 사건을 떠나서 생각해도 굳이 죽은 학생들을 영웅화하는 설정을 덧붙인 게 불편해.

모리블_ 죽은 자를 영웅화하는 건 결국 산 자들의 자기 위안을 위해서라고 봐. ‘그래도 의미 없는 죽음은 아니었다’고 생각하며 위안을 삼는 거지.

마틸다_ 그런가 하면 종우는 죽은 친구들보다 살아남은 자신을 더 불쌍히 여기는 것처럼 보이는데, 살아남은 자의 자기 연민은 진정한 의미에서 죽은 자를 위한 애도가 될 수 없잖아. 이 작품에서 산 자가 죽은 자를 대하는 태도가 이기적이라고 느꼈어.

스위니_ 박해림 작가의 전작을 돌아보면 동시대의 이슈가 뭔지, 관객들이 뭘 보고 싶어 하는지 잘 포착해낸다는 생각이 들어. 나이든 여성이 주인공인 <땡큐 베리 스트로베리>, 퀴어 여성이 주인공인 <금란방>, 치매 노인이 주인공인 <나빌레라> 등이 그랬지. 그런데 소재를 차용하는 데서 더 나아가, 그 이슈에 대해 어떤 목소리를 내고 싶은지는 잘 모르겠어.

마틸다_ 두 주인공의 이야기가 하나의 주제로 묶이지 않는다는 문제도 반복적으로 나타나. <땡큐 베리 스트로베리>의 할머니와 이웃집 아이, <금란방>의 여자 전기수와 남자 관리, <나빌레라>의 치매 노인과 청년도 그렇잖아. 여러 인물의 이야기를 하나의 뚜렷한 메시지로 응축한다면 더 좋은 작품이 탄생할 거라고 기대해.


*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193호 2019년 10월호 게재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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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안세영
사진제공 | 아이엠컬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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