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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VIEW] 음악극 <섬: 1933~2019>, 너무나 반가운, 섬에서 들려오는 목소리 [No.191]





음악극 <섬: 1933~2019>
너무나 반가운, 섬에서 들려오는 목소리

‘선한 영향력’

주목해야 할 창작자들을 꼽을 때 가장 먼저 생각나는 이들이 있다. 목소리 프로젝트이다. 작가 장우성, 작곡가 이선영, 연출가 박소영이 이룬 팀의 이름인데, 이 이름은 여러모로 절묘하다. 프로젝트의 공식적인 목표는 이렇다. ‘선한 영향력을 바탕으로 귀감이 될 수 있는 삶’을 살았던 사람들을 무대 위에 복원하는 것. 그중에서도 ‘선한 영향력’이라는 말에 눈이 간다. 선한 영향력이란 다른 사람의 삶으로 증명되기까지 자기 삶의 가치를 유보한 사람들만이 갖는 힘인데, 이런 힘을 가진 이들은 소위 말하는 위인이 아니다. 그들의 삶은 업적이라는 결과에 매이지 않기 때문이다. 이들이 남긴 것은 업적이 아닌 삶 자체이다. 그들의 삶은, 허공으로 흩어질 만큼 가냘프지만 듣는 이에게는 생생한 삶으로 살아나 기억으로 새겨지는, 목소리와 같다.

이 프로젝트가 발굴하는 사람들이 다른 창작뮤지컬의 주인공들과 확연히 다른 이유가 이것이다. 이 프로젝트의 관심은 유명(有名)이 아닌 오히려 무명(無名)에 있다. 첫 번째 프로젝트에서는 전태일 한 사람을 담았지만 이번 두 번째 프로젝트의 관심이 소록도에서 살았던 여러 사람들로 넓어진 것도 이 맥락일 거다. 삶의 성과가 아니라 삶 자체를 남긴 사람들의 목소리를 복원하면서 생생해지는 목소리는 하나 더 있다. 바로 목소리 프로젝트의 목소리이다. 이 세상이 기억해야 할 사람들을 담으려는 창작자들의 목소리는 차분하면서도 뜨거우니,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하는 목소리에는 관객의 귀를 반갑게 파고드는 힘이 있다. 그 힘을 무대 위에서 보여주는 것이야말로 공연이 발휘하는 ‘선한 영향력’일 터. 흥행의 경쟁력이라는 말에 밀려 많은 공연들이 잊고 있었던 가치이다.

제작사의 목소리에 묻히지 않는 창작자들의 목소리를 듣기는 정말 오랜만이다. 기존의 제작 시스템에 매이지 않고(이번에는 우란문화재단이 제작하긴 했지만!) 펀딩을 비롯한 대안적 제작 환경을 모색했기에 가능한 결과일 텐데, 이런 비주류적인 작업 스타일이야말로 목소리 프로젝트가 만들어 나가는 최고의 작품이 아닐까 싶다. 그중에서도 돋보이는 것은 협업 방식이다. 작가와 작곡가 그리고 연출가가 서로의 문법에 유기적으로 반응할 수 있으려면 창작 과정에서 대부분의 시간을 공유해야 하는데, 그러기 위해서는 작품마다 창작자의 조합이 바뀌는 게 아니라 고정적인 팀을 이루어 창작의 지속성을 확보하는 것이 필요하다. 자칫하면 협업이 아니라 분업이 되어버리기 십상이니 말이다. 목소리 프로젝트는 팀 창작이라는 이상적인 협업의 가능성을 보여준다. 작가의 글과 작곡가의 음악 사이의 밀착도가 높아지고, 연출의 공간은 음악의 시간과 더불어 구성되는, 방향성과 완성도가 옹골찬 <섬: 1933~2019>(이하 <섬>) 같은 결과물은 이러한 협업이 일군 성과이다.

완성된 작품이 좋은 협업의 결과물인지 알아보는 방법은 간단하다. 개별 창작자의 역량이 더욱 풍성해지는지를 보면 된다. <섬>을 보는 재미 중 하나는 이들이 좋은 창작자임은 진즉에 알았지만 그 이상의 모습을 발견하게 되는 새삼스러움이다. 특히 연출가 박소영은 그간에 보여주었던 아기자기한 소품의 감성과는 다른, 묵직하면서도 역동적인 장면 만들기를 보여준다. ‘한 사람’과 ‘사람들’을 오가는 장면의 구성과 전환은 감정의 몰입과 생각의 거리 두기를 적절하게 배합시킨다. 여기에서 이야기의 진심과 음악의 슬픔을 따로 떼어놓을 수 있을까? 이들의 협업에서 보게 되는 것은 서로가 주고받는 ‘선한 영향력’이다.


음악극, <섬>

목소리 프로젝트에서 또 하나 눈에 띄는 것은 음악극이라는 타이틀이다. 왜 뮤지컬이 아니라 음악극일까? 뮤지컬과 음악극의 차이를 이야기하려면 좀 더 많은 지면이 필요하겠지만, 우선 정리하자면 음악극은 기원(Origin)이요 뮤지컬은 시작(Beginning)이라고 말할 수 있다. 인간의 심연을 들여다보는 비극부터 인간의 어리석음을 비웃는 희극까지 모든 드라마는 음악으로부터 비롯되었으니, 음악극은 인간의 본질을 담는 모든 드라마의 기원이 된다. 이에 비해 뮤지컬은 기원으로부터 파생된 수많은 가능성 중에서 특정한 형식을 선택함으로써 시작된 장르이다. 시작점이 분명하기에 장르의 정체성과 형식의 문법 또한 확연한바, 뮤지컬의 시작은 쇼이지만 뮤지컬의 기원은 음악극이다. 음악극은 뮤지컬을 품는 꽤나 넓은 범주인 거다.

목소리 프로젝트는 뮤지컬의 틀을 한 발짝 넘어선 곳에 자기들의 <섬>을 가져다 놓았다. 이야기의 질감이 뮤지컬의 낙관보다는 연극의 사색에 가까운 것도 그렇고, 비어 있는 무대에 세 개의 시공간을 겹쳐 놓은 연출의 그림도 그렇지만, 뮤지컬과의 거리 두기는 음악에서 좀 더 분명하게 드러난다. <섬>의 음악은 서사극의 해설자 같다. 음악이 인물의 ‘말’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뮤지컬이라면 분명히 저 인물의 노래여야 하건만 이 작품에서는 그 사람의 말을 누군가 대신 노래한다. 대사이기보다는 지문에 가까운 거다. 이럼으로써, 마치 카메라의 응시나 소설가의 묘사처럼, 이 작품의 노래는 한 사람이 토해내는 감정이 아니라 그 사람을 지켜보는 시선이 된다. 관객의 감정을 얻기 위해 들이미는 음악에 익숙해져 있다가, 관객으로 하여금 감정을 향해 다가오게 만드는 음악을 만났을 때 감동의 크기는 몇 배로 증폭된다. 선율의 감성이 아니라 생각의 거리에서 만들어진 음악의 슬픔은 귀에 꽂히지 않고 마음에 꽂힌다.

그렇다고 해서 이 작품이 고즈넉한 거리 두기에만 머물러 있는 건 아니다. 오히려 <섬>의 목소리는 뜨겁고도 담대하다. 1930년대와 1960년대 그리고 지금 현재, 세 개의 시공간을 다루는 <섬>의 이야기에는 과거와 현재의 사람살이가 공존한다. 서사극의 설명으로 재현되는 과거 소록도 사람들의 이야기는 비참함 가운데서도 소소한 일상이 있었음을 담담하게 그려낸다. 그 지옥 같은 곳에도 마음을 가진 사람들이 살고 있었음을 먹먹하게 지켜보게 되는 거다. 하지만 현재를 살아가는 사람이 등장하는 순간 서사극의 설명은 관객을 향한 말 걸기가 된다. 장애라는 ‘섬’에 갇혀 살아가는 사람들, 우리 옆에 있지만 없는 것처럼 치부되는 지금 여기의 사람들이 관객의 눈앞에서 자기의 이야기를 할 때 그 목소리는 극을 뚫고 나와 현실의 실체를 입는 것이다. 대사의 옷을 입은 교조적인 경구 따위는 이 작품 어디에도 없는데도 무대 위의 목소리는 관객에게 아프게 다가온다. <섬>처럼 거리 두기의 극적인 힘을 잘 분배할 줄 아는 작품이 있었던가? 뮤지컬에서는 도덕적 성급함을 자주 보았을 뿐, 이런 미덕은 거의 보지 못한 것 같다.


그 섬에 가고 싶다

사실 <섬>의 구성은 그리 쫀쫀하지 않다. 1930년대에 소록도에 끌려간 백수선과 1960년대에 소록도에서 일했던 마가렛과 마리안느 수녀의 이야기는 소록도라는 공통분모로 자연스레 연결되지만, 발달장애아를 키우는 2019년의 고지선 이야기는 적잖이 인위적이다. ‘섬’이라는 키워드를 지금 여기의 주제 의식으로 확장시키려는 의도일 텐데, 극 전체의 흐름에서 볼 때 마지막에 고지선의 말로 설명되는 ‘장애도(島)’에 대한 이야기는 갑자기 마이크가 작가에게 넘어간 것처럼 직접적이어서 다소 뜨악하기도 하다. 앞서 두 개의 에피소드에서는 소록도 사람들의 목소리가 복원되지만 2019년의 에피소드에서는 목소리 프로젝트의 목소리가 더 크게 느껴지는 거다. 그런데 솔직히 말하자면, 이것조차 좋다. 결국 모든 작품이란 작가가 세상을 향해 외치는 목소리 아니던가. 이 목소리로 때로는 말을 건네고, 때로는 싸움을 걸면서 공연은 세상과 무관해지지 않는 거다.

정운선과 백은혜를 비롯해 이 작품에 등장하는 모든 배우들은 협업의 동반자로서, 작품을 빛냄으로써 스스로 빛난다. 이들은 처음을 열 때 ‘사랑이 머무르는 시간’을 노래한다. 하지만 배우들이 연기한 사람들의 시간은 가장 참혹했던 삶이고, 다른 이를 위해 온전히 낭비한 삶이며, 나아지기를 기대할 수 없는 삶이다. 마지막을 닫으며 또다시 ‘사랑이 머무르는 시간’을 부를 때 배우들의 노래는, 사랑이란 이런 삶 위에서 피어오르는 희망임을 말하는, 목소리가 된다. 얼마 만인지, 극장에서 이런 노래를 들은 지가. <섬>에서 들려오는 모든 목소리는 아름답다. 거기에 진짜 사랑이 담겨 있기 때문이다.

*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191호 2019년 8월호 게재기사입니다.
* 본 기사와 사진은 “더뮤지컬”이 저작권을 소유하고 있으며 무단 도용, 전재 및 복제, 배포를 금지하고 있습니다. 이를 어길 시에는 민, 형사상 법적책임을 질 수 있습니다.

글 | 정수연 공연 평론가
사진제공 | 우란문화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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