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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ULTURE INTERVIEW]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 강기둥, 환상을 진실로 만드는 힘 [No.179]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 강기둥
환상을 진실로 만드는 힘


어떤 배우가 되겠다는 거창한 목표 대신 그저 마음 가는 작품을 하나씩 따라 자연스레 여기까지 오게 됐다는 강기둥. 올여름 그를 오랜만에 연극 무대로 불러 세운 작품은 인기 일본 작가 히가시노 게이고의 동명 소설을 바탕으로 한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이다. ‘히가시노 게이고’ 하면 흔히 추리 소설을 먼저 떠올리기 마련이지만,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은 타임리프라는 판타지 형식을 빌려 크고 작은 고민을 안고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따뜻하게 그린 작품이라는 사실.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과 함께 평범한 기적을 만들어갈 강기둥, 그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지금 이때 필요했던 선택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은 어떻게 참여하게 됐어요? 신작 연극에 출연하는 건 꽤 오랜만 아닌가요.
요새 제가 매력을 느끼는 작품이 힐링이 되는 훈훈한 이야기예요. 따뜻한 작품을 하고 싶다는 생각보다는 제 자신이 따뜻한 작품을 보고 싶었다고 할까. 그런데 마침 소영 누나(박소영 연출)한테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 이야기를 들은 거예요. 예전에 얼핏 원작 소설 내용을 본 기억이 있는데, 되게 따뜻하다는 인상을 받았거든요. 그리고 소영 누나는 잘 아는 연출이니까 재미있게 만들어갈 수 있겠단 생각이 들었어요. 결과는 관객분들이 판단할 문제이다 보니 경력이 쌓일수록 작업 과정이 점점 더 중요해지더라고요.

혹시 원작 소설 이야기는 어떻게 접했던 건지 기억해요?
제가 히가시노 게이고 작품을 좋아해요. 잘 아시겠지만, 원래 살인 같은 어둡고 센 소재의 추리물을 잘 쓰는 작가인데,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은 여타의 다른 작품들과는 색다른 분위기라고 하더라고요. 저는 히가시노 게이고 작품이니까 으레 나미야 잡화점에서 무시무시한 일이 벌어지나 보다 했거든요. (웃음) 아, 최근에 일본에서 영화로도 개봉한 거 아세요? 그 시나리오가 연극 대본을 바탕으로 한 거래요. 원작 소설이 꽤 두꺼워서 접하기 쉬운 영화를 먼저 봤는데, 역시 따뜻한 감동이 있더라고요. 되게 좋았어요.

관심사는 지금 내 마음에 따라 달라지기 마련이잖아요. 요즘 왜 따뜻한 이야기에 마음이 끌린 것 같아요?
글쎄요. 요즘 제 삶이 피폐합니다…는 아니고요. (웃음) 지금은 많이 좋아졌지만, 올해 들어 건강이 안 좋아져서 그런가. 센 이야기보다는 순한 이야기가 좋더라고요. 은근하게 힘을 주는 착하고 따뜻한 이야기들 있잖아요. 그리고 최근 몇 년 사이 드라마에도 조금씩 출연하다 보니 정신없이 시간을 보냈거든요. 엄청 바빴다고 하긴 좀 그렇지만, 어떤 때는 경주마처럼 달리고 있는 기분이 들더라고요. 그래서 주위를 천천히 넓게 바라볼 수 있는 종류의 이야기가 저한테 필요하다고 생각했어요. 아마 이 작품을 끝내고 나면 또 다른 분위기의 작품에 끌릴 거예요. (웃음)

연극은 2016년 <큐> 이후 2년 만인데, 공연 장르에 따라 무대에서 느끼는 즐거움에 차이가 있을까요.
얼마 전에 <여신님이 보고 계셔> 지방 공연이 있었는데, 그때 다시 한 번 느꼈어요. 앞으로도 노래 울렁증을 완전히 떨치기는 힘들겠단 걸요. (웃음) 제가 무대에서 노래 울렁증이 심하거든요. 그래서 뮤지컬은 연습에 들어가기 전부터 작곡가님이나 음악감독님을 미리 뵙고 부탁드려요. 저 좀 도와달라고요. 저 스스로 부족하다는 걸 아니까 연습을 많이 하게 되는데, 시간을 쏟는 만큼 소중해져서 오히려 더 떨리는 것 같아요. 그렇다고 연극이 쉽다는 건 아니고요. 그런데 솔직히 말하면, 연극할 때는 뮤지컬이 하고 싶고, 뮤지컬 할 때는 연극이 하고 싶고 그래요. 이상한 심리죠. (웃음) 물론 뮤지컬이든 연극이든 작품을 할 수 있다는 것에 매번 감사하지만요.




첫 뮤지컬이었던 <러브레터>는 연출가의 권유로 출연하게 된 거라 들었어요. 그런데 그 이후에도 꾸준히 뮤지컬에 참여한 걸 보면 첫 작업에서 가능성을 찾았나 봐요.
아뇨, 예전이나 지금이나 뮤지컬은 저보다 노래 실력이 훌륭한 사람들이 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다만 감사하게도 다양한 뮤지컬 가운데 제가 할 수 있는 부류의 작품이 있는 것 같아요. 예를 들어 클래식한 발성을 써야 하거나 노래를 많이 불러야 하는 작품은 제가 감히 못하죠. 작품을 할 땐 관객 입장도 생각해야 하니까요.

공연 연습은 어떻게 진행 중이에요?
지금 열심히 테이블 작업을 하고 있어요. 연출님, 각색 작가님, 배우들이 다 같이 대본을 읽어 보면서 디테일을 찾아가고 있죠. 제가 생각할 때 이 작품의 매력은 소소한 이야기에 판타지적인 요소가 들어가 있다는 점이거든요. 거창한 SF 판타지가 아니라 평범한 듯 잔잔하게 흘러가는 판타지요. 물론 시간 이동이라는 게 공상적인 이야기이긴 하지만,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 속 세상은 왠지 불가능한 세계처럼 보이지 않는 묘한 느낌이 있어요. 연습도 작품 분위기를 따르는 듯 예쁘고 착한 이야기를 많이 하다 보니 요즘엔 연습하는 것 자체가 힐링이에요.

쇼타라는 인물에 대해서는 어떤 고민을 하고 있나요. 나미야 잡화점의 고민 상담소를 부활시키는 중요한 인물인데, 대본에 쇼타 자체의 사연은 많이 안 나오잖아요.
일단 쇼타는 아츠야나 코헤이를 떼어 놓고 생각할 수 없는 캐릭터인 것 같아요. 저한테 이 세 사람은 하나의 유기체 같은 느낌이거든요. 세 사람 다 좀 바보 같고 모자란 면이 있지만, 셋이 함께여서 서로의 부족한 점들이 채워지죠. 성격은 셋이 조금씩 다른데, 제 생각에 쇼타는 논리적으로 빈틈없이 행동하고 싶어 하는 사람 같아요. 머리를 되게 잘 쓰고 싶어 하는 욕심이 있달까. (웃음) 왜냐면 셋이 좀도둑질할 때 행동 계획을 세우는 사람이 쇼타거든요. 세 사람이 물건을 훔치고 나미야 잡화점에 숨는 경로도 쇼타가 택한 거고요. 연습하면서 저희들끼리 쇼타는 추리소설을 좋아할 것 같다고 그랬어요.

나미야 잡화점에 오는 다양한 상담 편지 가운데서 특별히 뭉클했던 사연이 있어요?
아기를 낳을지 말지 고민하는 미도리 ‘그린 리버’의 사연이요. 그린 리버는 선뜻 아이를 낳을 수 없는 상황인데, 그렇다고 포기할 수도 없는 사연이 있거든요. 스포일러를 피해 이야기를 좀 건너뛰자면, 딸이 세상에 혼자 남겨져 엄마를 원망하다 나중에 그 오해가 풀려요. 또 다른 나미야 잡화점의 상담자 세리로 인해서요. 두 사람은 아동 보호 시설에서 같이 자란 사이거든요. 선한 의지가 절망이 됐다가, 절망이 다시 선한 의지로 순환된다는 점이 인상적이었어요. 삶의 깊이가 느껴지죠.




진실 같은 환상에 매료된 소년
학창 시절 예고에 진학하기 위해 제주도에서 서울로 올라왔잖아요. 그때 나미야 잡화점에 편지를 보냈다면, 어떤 고민을 썼을 것 같아요?
질문을 듣자마자 딱 떠오른 에피소드가 있어요. 중학교 때 일인데, 학교 50주년 축제에서 연극을 크게 한다는 거예요. 이건 대놓고 장난칠 수 있는 기회다 싶어서 장난기 많은 친구들을 다 끌고 연극반에 들어갔죠. 평소에 장난치면 선생님들한테 볼 꼬집히고 혼나는데 무대에서는 맘대로 장난쳐도 안 혼날 것 같더라고요. (웃음) 근데 거기서 연기에 빠지게 된 거예요. 당시 대학로에서 한얼가족극단을 운영하시는 이건동 교수님이 오셔서 연기 지도를 해주셨는데, 선생님께 전자 메일로 상담 편지를 보냈어요. 앞으로 연기를 하고 싶은데 어떻게 해야 할까요, 이렇게요. 교수님 얼굴을 뵈면 부끄러워서 말을 못 꺼낼 것 같았거든요.

그때 어떤 답장을 받았는지 기억해요?
그럼요. 연기는 재미만으로는 할 수 없다고, 제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어려운 길이라고 걱정해 주셨어요. 근데 그땐 어렸으니까, 선생님은 하시면서 왜 나는 안 된다는 거지 하는 반항심이 들었죠. (웃음) 물론 마음 한편에는 이 길이 맞나 하는 불안감도 있었고요. 그때 만약 나미야 잡화점 같은 곳이 있었다면 불안한 미래에 대한 고민을 썼을 것 같아요. 어떤 답장을 받든 연기를 하긴 했을 것 같지만요. 연기라는 게 뭔지 너무너무 궁금해서 지금 안 해보면 평생 후회할 것 같았거든요.




십 대 때 집을 떠날 정도로 연기에 매료됐다는 게 보통의 감정이 아니잖아요. 돌이켜 보면 뭐가 그렇게 재밌었던 것 같아요?
즉흥극 수업을 하면서 말로 설명할 수 없는 되게 신기한 경험을 했어요. 아직도 생생히 기억나는데, 선생님께서 바다를 만들어보라고 하신 적이 있거든요. 그런데 눈을 감으니까 제가 바닷속에 있고 저 앞에서 물고기가 저를 향해 오는 거예요. 거짓말 같은 이야기지만, 저는 그때 진짜로 물고기를 봤어요. 진짜로요! 너무 신기한 경험이라 머릿속에서 지워지지가 않더라고요. 애들하고 장난치면서 놀 때의 재미하고는 다른 차원의 쾌감이었으니까. 그땐 배우가 되고 싶었다기보다 막연히 연기가 뭔지 알고 싶었던 것 같아요.

당시의 어린 강기둥에게 훗날 이 작품은 놓치지 말라고 알려준다면 어떤 작품을 꼽을 거예요?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은 아직 안 한 작품이니까 제외하고 고를게요. 형평성을 위해. (웃음) 지금까지 만난 작품 중에서 유독 절 힘들게 하고, 또 그만큼 큰 기쁨을 안겨줬던 게 <로풍찬 유랑극단>이에요. 현실과 허구의 경계에서 연기에 미쳐 있는 하가림이란 캐릭터를 하면서 질타도 많이 받고, 칭찬도 많이 들었거든요. 무엇보다 저한테 연극의 힘을 느끼게 해준 역할이라 앞으로도 못 잊을 것만 같아요. 2012년 초연부터 재공연에 쭉 참여하다 지난봄 처음으로 관객 입장에서 공연을 보게 됐는데, 느낌이 되게 이상했어요. 공연 시작하자마자 혼자 울었죠. 약간 주책바가지 느낌이었어요. (웃음)

끝으로,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이 관객들에게 어떤 선물이 되길 바라요?
저희 작품 대사 중에 이런 말이 있어요. 나미야 잡화점의 주인 유지 아저씨가 오랜 세월 고민 상담을 하면서 알게 된 게 있는데, 상담을 하는 사람들 대부분이 사실은 이미 답을 알고 있다는 거예요. 답을 알면서도 누군가에게 고민을 털어놓는 이유는 자기 결정이 옳다는 걸 확인하고 싶어서라는 거죠. 제가 처음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 대본을 봤을 때 좋았던 이유도 정답을 내려줘서가 아니라 다양한 사람들의 고민을 함께 공유할 수 있어서였어요. 살다 보면 지치고 힘들 때가 많잖아요. 누구나 하나쯤은 고민을 안고 살아갈 텐데, 고민을 함께 나눌 수 있다는 점에서 저희 작품이 위로가 됐으면 좋겠어요.


*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179호 2018년 8월호 게재기사입니다.
* 본 기사와 사진은 “더뮤지컬”이 저작권을 소유하고 있으며 무단 도용, 전재 및 복제, 배포를 금지하고 있습니다. 이를 어길 시에는 민, 형사상 법적책임을 질 수 있습니다.

글 | 배경희
사진 | 이배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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