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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ULTURE INTERVIEW] <세일즈맨의 죽음> 이순재 [No.160]





<세일즈맨의 죽음> 이순재

60년 동안 깊고 단단해진 연기 철학




40대들은 꼬장꼬장하게 호통을 치는 대발이 아버지로, 30대들은 엄격하고 강직한 허준의 스승 유의태로, 20대에게는 <거침없이 하이킥>의 허당 아버지로, 또 최근에는 여행 프로그램에서 해외에서도 거침없이 결정하고 길을 나서는 ‘직진순재’로 배우 이순재의 첫인상이 만들어졌을 것이다. 그는 영화, 드라마, 연극을 쉼 없이 오고가며 어느 분야에서든 사랑을 받았다. 이렇게 오랫동안 한결같이 기복 없는 사랑을 받은 배우도 드물다. 이순재는 1956년 <지평선 넘어>로 데뷔한 후 올해 연기 인생 60년을 맞았다. 올해가 마무리되어 가는 12월 그의 연극 대표작 중 하나인 <세일즈맨의 죽음>(12월 13~22일, 아르코예술극장 대극장)으로 60주년 기념 연극을 올린다. 이 작품은 1978년 40대에 처음 연기한 후, 60대인 2000년, 그리고 2012년 <아버지>란 제목으로 세 차례 공연한 바 있다. 이제 80대에 들어선 그가 다시 윌리 로먼으로 선다.





독자적인 배우의 예술성


올해가 60주년이었는데, 그동안 기념행사가 없었습니다. 올해가 다 가는 12월에 기념 공연을 하게 된 이유는 무엇인가요?

나는 전혀 그런 인식이 없어. 횟수 계산도 없고 생일잔치도 제대로 해본 적이 없어요. 아직도 내 생일이 언젠지 모르고 있으니까. 음력이다 보니까 정확한 날짜를 모른다고. 관심도 없고. 세종대 김태훈 교수를 비롯해 후배들이 중심이 되어서 그냥 넘어가면 섭섭하니 해보자고 해서 이렇게 된 거지.


60주년 기념작으로 <세일즈맨의 죽음>을 올립니다. 이전에도 세 번 이 작품을 했는데, 왜 이 작품을 기념작으로 선택했나요?

뭘 할까 하다가 그전에 했던 작품이지만 원작 그대로 해보자고 한 거지. 78년에 했는데 40대 후반이니까 나이가 일천해서 미처 알지 못했던 부분이 있었다고. 60대에 다시 하니까 이제는 조금 알겠더라고. 아. 이런 걸 상징했구나. 그런 고민 끝에 기념 작품으로 이 작품을 올리기로 한 거예요

.

2012년에 <아버지>란 이름으로 올린 공연을 예외로 두면 40대, 60대 그리고 지금 80대에 공연을 올립니다. 근 20년을 주기로 올리게 되는 것 같습니다.

40대에 미숙했지만 욕심이 나서 하게 됐어요. 세종문화회관 소극장 개관 기념으로 올렸는데 흥행이 돼서 드라마센터에서 일주일 연장 공연을 했다고. 근데 40대에 얼마나 해결했겠어. 더스틴 호프만이 40대에 이 작품을 했어요. 작가인 아서 밀러에게 너무 어린데 해도 되겠냐고 물으니 나이 들면 힘들어서 하기 힘든 작품이라고, 지금 나이가 좋다고 그랬대. 근데 내가 보니까 역시 어리더라고. 그전에 하던 선배들의 연기가 훨씬 원숙미가 있어. 더스틴 호프만이 연기를 잘하는 배우지만 아쉬움이 있었다고.


작품에서 이전에 미처 알지 못했던 부분이나 새롭게 깨닫게 되는 부분이 있을까요?

근래 와서도 잘못 해석되는 장면이 있는데, 1막 1장 끄트머리에 주인공이 침대에 누워서 “달이 아파트 사이를 가고 있군”이라는 대사를 해요. 이걸 근래까지 잘못 해석해서 아무 일도 아닌 것처럼 감상적인 표현으로 처리하는 연극이 더러 있다고. 정반대지. 윌리는 브루클린이긴 해도 뉴욕 원주민이야. 사냥도 할 수 있었지, 그래서 대사 중에 토끼도 있고, 뱀도 있었다는 말을 해. 자연과 함께 산 사람인데 빌딩이 들어서면서 달의 영역이 좁아진 거지. 도시화에 대한 경고, 환경에 대한 문제를 얘기하면서 (윌리가 자신의) 사회적 역할의 축소를 이야기한 거지. 거기 영어 Gee라는 감탄사가 들어 있어. 그런데 이전 번역자가 이것을 뺐다고. 그게 기분 좋아서 하는 감탄사가 아니라 ‘젠장, 제기랄’ 뭐 이런 의미라고. 2000년대 버전에서는 그런 것을 추가해서 원본을 다시 보면서 대조하기 시작했어요. 지금 대본은 두 분의 번역 대본에 원본을 비교하면서 수정하고 있는 거예요.


원본 비교 작업도 직접 하시나요?

연출이나 작가도 하지만 배우도 나름대로 자기 파트를 공부해 놓아야 한단 말이지. 왜냐면 너무 한국화해서 어휘 선택을 하다 보면 해석이 잘못되어 버린다고. 우리가 저번에는 이게 부족했구나. 이런 게 나오기 시작해. 요즘 대학로 작품을 보면 원작을 너무 쉽게 생각하는 경향이 있어. 인물을 이상하게 변형하거나 이상한 관계를 맺는다거나, 그게 대단한 것이 아니거든. 그것도 독자성이고 창조성이라고 하면 할 말은 없지만, 옛날 원작 중심으로 보는 안목으로는 탐탁하지가 않다는 얘기지. 체호프나 셰익스피어 세계적인 문호가 쓴 작품은 보통 작품이 아니란 말이야. 정치, 경제, 사회, 천문, 지리 다 들어 있어. 모든 것이 시대 상황에 녹여서 어떤 시대의 변화나 인간 삶의 변화를 담아낸 작품이란 말이야. 그런 걸 제대로 찾아내서 표현할 수 있도록 하는 게 배우의 본질이란 말이야.


연극에서 배우의 역할, 예술성을 강조하시는 것 같습니다.

명배우 로렌스 올리비에가 연극, 드라마, 영화를 다 하는 양반인데 그 사람이 분명히 규명을 했어요. 영화는 감독의 예술이고, 드라마는 작가의 예술이고, 연극은 배우의 예술이다. 무대에 올리는 것은 배우라고. 배우는 연출의 인형이 아니야. 배우에겐 독자적인 예술성이 있다고. 그걸 끌어올리는 것이 연극 행위지. 거기서 연기의 편차가 생기고, 다양성이 생기는 거지. 같은 역할을 해도 배우마다 다르다고. 신구 씨랑 <황금연못>에서 같은 역할로 출연했는데 연출은 같지만 배우의 해석은 달랐지. 그게 바로 연극이지. 신구 씨의 해석과 내것에 차이는 있지만 목적은 같아. 이런 게 바로 배우의 독자성이고 배우의 예술성이지.



한 세대의 몰락

<세일즈맨의 죽음>을 흔히 사회 비극이라고 합니다. 개인의 문제에서 비롯되는 것이 아닌, 사회에서 비극의 원인이 생깁니다.

윌리는 베테랑 세일즈맨이었어. 근데 사회가 달라졌단 말이야. 이 사람은 주로 입으로 사업을 했는데, 이제는 그런 식이 아니라 데이터를 가져다 놓고 하는 게 빠르단 말이지. 환경의 변화, 비즈니스의 변화, 발전에 따라 도태되는 사람의 이야기지. 그게 올드 제너레이션(old generation)의 몰락, 퇴조를 말하는 거고. 은근히 미국 자본주의에 대한 비판과 야유가 들어 있어.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족 관계나 부부, 부자 관계를 보면 굉장히 동양적이야. 서양의 가족도 궁극적으로 우리와 똑같아. 방식과 패턴이 다를 뿐이지 정신은 똑같아.

그래서 첫째 아들 비프와 아버지의 관계가 중요합니다. 세일즈맨이란 직업과 윌리의 교육관도 연관이 있는 것 같습니다.

극히 외형성을 강조하는 교육관이지. 늘 강조하는 게 인기라고. 극대화된 아버지의 기대에 미치지 못하면서 허물어진 아버지의 회환 이런 게 있다고. 아들은 아들대로 아버지의 기대가 크니까 부담스러운 거지. 내 능력대로 홍익대 가면 되는데 왜 자꾸 서울대 가라고 하느냐 말이야. 예전에도 부모가 의사면 의사, 판사면 판사를 시키려고 했지. 좋은 직종이니까. 우리 같은 직업은 부모가 반대하는 직업이었어. 주변의 반대와 멸시에도 불구하고 돈도 못 벌지만 내가 하고 싶은 것을 밀고 나온 게 우리지.


친구 찰리가 있는 상태에서도 윌리가 형의 환상을 보고 대화를 하는데요. 그때 찰리를 의식하고 연기하시나요?

보는 게 아니지. 자의식에서 의식의 대화로 봐야지. 윌리가 형에 대한 동경이 커요. 물질문명이 반영된 거지. 성취에 대한 동경이 큰데, 자신이 잘나가지 못했으니까. 그런 자의식이 문득문득 비현실적이지만 의식 속 형과의 대화로 나오는 거지. 내면의 목소리와 대화뿐만 아니라 회상의 회상도 있고 실험적인 작품이에요. 그런 부분을 어떻게 표현하느냐가 중요한데 상당히 어려워. 연기 기술적인 면에서 회상으로 넘어가는 장면, 의식과 대화하는 장면에서 표현의 디테일을 고민하고 있어요.


선생님은 영화와 TV 드라마, 연극 무대를 모두 하시는데요. 연기술이나 참여하는 마음가짐에서 차이가 있나요?

연극도 대극장과 중·소극장 연기가 다르지. 영상은 표현의 디테일이 다르다고. 연극은 얼굴 표현의 디테일이 전달이 잘 안 돼. 배우는 표현하지만 관객에게 잘 전달이 안 된다고. 영상은 세포 하나의 미세한 떨림도 연기 표현에 차이가 나니까 다르지. 그래서 영화는 한 컷 때문에 한두 시간을 찍는다고. 그 이상의 것을 뽑아내려고 하니까 한두 시간 동안 같은 걸 찍는 거지. 영화는 테마의 촬영이거든. 보통 이미지를 찍는 거야. 감독에 따라 뒤집힐 수가 있다고. 드라마는 스토리텔링이 일관적이어야 하니까 어쩔 수 없이 작가에 따라 운영될 수밖에 없어. 한국 상황에서 작가의 영향이 절대적이야. 대본 수정을 제대로 하는 연출이 드물어. 그런데 지금 작가들은 이야기는 잘 꾸리지만, 문학적으로 봤을 때 미숙한 점이 있다고. 필요하면 작가와 토론하자고 해서 대본을 수정하지. 예전에는 다 그렇게 작업했어. 우리는 드라마를 영화와 연극의 중간으로 봤다고. 그때 작가들은 전부 한국 문단에 등단한 대가들이었거든. 어휘 하나 가지고 토론하고 했다고. 작가가 이 어휘를 표현한 의도가 이거다. 이걸 표현해 달라고 요구하기도 하고.





배우라는 직업

철학과를 나오셨는데 어떻게 연극을 하게 되었나요?

철학이라는 학문이 기본이기 때문에 여러 길로 파생될 수 있단 말이야. 철학과에 갔으니 철학 교수가 되는 게 궁극적인 목표겠지. 아니면 도인이 되거나. 우리는 지구력이 없어. 철학과에 들어가긴 했지만 오래 있을 생각은 아니었고. 들어가 보니까 당대 최고의 석학이 우리 과에 다 계셨어. 고건 총리 아버지인 고형곤 박사, 헤겔 철학의 대가 박정호 박사. 당대 최고의 석학들이셨지. 공부를 덜해서 그렇겠지만 구체적으로 학문 전수를 받진 않아도 그분들 체취에서 배우는 게 있다고. 이 길로 들어설 수 있었던 것도 주임교수가 양해해 줘서 가능했지. 이 계통 나온 친구들이 정기 졸업한 친구들이 별로 없어. 나는 4년 안에 졸업했거든. 한번은 대학 경연 대회 참여하려면 3주를 빠져야 했다고. 그때 주임교수 강의가 걸린 거야. 여차여차 해서 빠져야 한다 했지, 씩 웃으시더니 “연극도 잘하면 철학이야.” 허락해 줬어. 이쪽에서 밥벌이 할 줄 알았는지 교수님이 혜안이 있었나 봐.


엄격한 대발이 아버지에서 ‘직진순재’까지 세대마다 기억하는 모습이 다릅니다. 어떻게 이렇게 전 세대에게 사랑을 받을 수 있나요?

그런 기회가 왔던 거지. 배역을 가리는 배우들이 있어. 멜로드라마 주인공 의식을 가졌던 사람들은 항상 깨끗하고 멋있는 역할만 취하려고 했다고. 그걸 해왔고 그걸로 끝이야. 그 이미지 외엔 다른 이미지가 없지. <천의 얼굴을 가진 사나이>라는 영화가 있는데 천의 얼굴은 아니더라도 스무 개 정도의 얼굴은 표현할 수 있어야 배우 아니겠어. 배우 정신이 뭐냐면 분장에서 나오는 거거든. 메이크업한다는 건 나를 돋보이게 하려고 하는 게 아냐. 그건 토크쇼 나오는 사람들이 하는 거고. 화장이지 분장이 아니라고. 분장은 나를 버린다는 의미야. 극적인 인물을 내 위에서 만들겠다는 정신이 분장이라고. 다양한 역할을 해야 재밌지, 만날 똑같은 거 하면 그거만큼 답답하고 재미없는 일도 없다고. 그러다 보면 귀한 것도 하고 천한 것도 하고, 높은 것도 하고 낮은 것도 하고, 좀 야한 것도 하고 그런 것이지.


악역을 하신 적도 있으세요?

악한 많이 했지. 보스도 해보고 강간범도 해보고. 그때만 해도 범인 하면 이미지가 나쁠 때야. 대선배 허장강 선생 같은 분은 인품이 좋고 후배들이 다 존경하는 분이었다고. 너그럽고 따뜻한 분인데 악역을 많이 해서 오해를 많이 샀어. TBC가 수사물을 제일 먼저 개발한 데잖아. <형사수첩>

이라는 수사물이 있었어. 첫 프로가 홍은동 소녀 강간 사건이었어. 연출을 허규가 했는데 고민을 하더라고. 범인 할 만한 사람들이 다 도망갔다는 거야. 내가 해줄게 했지. 근데 그후로 범인 할 사람을 못 찾으면 나한테 오는 거야. 그 시리즈 하는 동안 33번 내가 범인을 했지.


범인이나 강간범은 지금 이미지로는 상상도 안 되는데요.

그런 역할이 더 재밌어. 왜냐면 특수한 캐릭터가 나오니까 다이내믹하고 재밌다고. 표현하기가 좋지. 요즘은 악역들이 더 뜨더라고. 시대가 변한거지. 어떤 역할을 하든지 진실로 제대로 표현하면 평가를 받고 각광을 받는 시대가 온 거야. 범인 많이 하면 기피의 대상? 이젠 평가를 달리 받는 시대가 됐어. 관객들이 보는 눈이 생긴 거지.


오늘도 먼저 도착해서 대본을 읽고 계셨는데, 늘 일찍 오시는 것으로 유명합니다.

일찍 와서 여유 있게 차도 한잔 마시면서 하는 게 낫지. 다급하게 하면 안 돼. 우리도 하다 보면 피치 못해서 늦을 수가 있지만 습관이 되면 안 되지. 이 일은 집중이 되어야 해. 배우라는 직업은 모든 예술이 그렇겠지만 본질적으로 정신 가다듬고 잡념 없애고 해야 될까 말까야.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159호 2016년 12월호 게재기사입니다.


* 본 기사와 사진은 “더뮤지컬”이 저작권을 소유하고 있으며 무단 도용, 전재 및 복제, 배포를 금지하고 있습니다. 이를 어길 시에는 민, 형사상 법적 책임을 질 수 있습니다.


글 | 박병성
사진 | 김호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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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1건]

  • 항상 멋지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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