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뮤지컬협회는 10월 26일을 ‘뮤지컬의 날’로 제정해 뮤지컬 관련 시상식을 여는 등 한국 뮤지컬의 기념일로 삼고 있다. 10월 26일이 기념일이 된 이유는 한국에서 선보인 최초의 창작뮤지컬로 여겨지는 <살짜기 옵서예>가 1966년 이날에 초연됐기 때문이다.
<살짜기 옵서예>는 고전 소설 『배비장전』을 원작으로 김영수가 극본을 쓰고, 최창권이 곡을 써 완성한 작품이다. 초연 당시 임영웅이 연출하고 예그린 악단이 제작을 맡았다. 초연은 10월 26일부터 29일까지 단 나흘간 7회에 그쳤는데, 그럼에도 1만 6천여 명의 관객을 동원하는 기염을 토했다. 가수 패티 김이 초연에서 여주인공 애랑 역을 맡아 관객들의 호응을 이끌어냈다. 1960~70년대에 네 차례의 단기 공연을 이어 나갔고, 1996년에 이정화와 유희성, 송용태, 이희정 등 지금도 익숙한 인물들이 참여해 공연했으나 이후 17년간 공연된 적이 없었다. 2013년 예술의전당 개관 25주년을 기념하며, 재보수를 마치고 재개관하는 CJ토월극장의 첫 번째 작품으로 선택됐다.
원작 『배비장전』은 여느 고전 소설이 그렇듯, 결말과 세부 내용이 다른 판본들이 존재한다. 하지만 중심 내용이 애랑과 방자가 계략을 꾸며 짐짓 절렴한 체하던 배비장을 곤경에 빠뜨려, 위선적인 지배층의 행실을 비판, 풍자하는 점은 같다. 이를 토대로 만든 <살짜기 옵서예>는 배비장을 위선적인 인물로 조롱하기보다는, 지조 있고 순수한 인물로 그리고 있다. 제주에서 가장 빼어난 기생 애랑의 유혹에 넘어가 우스운 꼴을 당하기는 하지만, 죽은 아내를 생각하며 다짐한 지조나 애랑을 향한 배비장의 마음은 모두 진심이다. 배비장을 시험해보려는 계략으로 그를 꾄 애랑 역시 배비장의 진심에 마음을 열어 로맨틱한 해피엔딩을 맞는다. 남녀노소 누구나 쉽고 재밌게 즐길 수 있는 이 작품의 장르를 굳이 규정하자면 ‘사극 로맨틱 코미디’랄까.
이희준 작가가 개작한 2013년 버전은 원작의 느낌을 최대한 살리되 현대 관객의 입맛에 맞도록 친절하게 각색했다. 원작의 고어는 물론 제주도 방언으로 이뤄진 맛깔난 대사들을 잘 살려, 한국의 말맛을 제대로 느낄 수 있었다. 특히 제주의 바다와 들판, 폭포 등을 영상으로 구현해낸 것이 큰 차이였다. 배비장의 죽은 아내는 홀로그램으로 표현하고, 하루방은 3D 맵핑 기법을 접목해 눈알을 굴리거나 혀를 내미는 하루방을 만들어 큰 사랑을 받았다.